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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증인 진술 오락가락하자… 40대 판사 “늙으면 죽어야” 막말

입력 | 2012-10-26 03:00:00

■ 법원 또 폭언 파문




 

22일 오후 3시 서울동부지법 8호 법정. 이 법원 유모 부장판사(45)는 사기 및 사문서위조 혐의로 기소된 조모 씨의 유무죄를 따지기 위해 서모 씨(66·여)를 증인으로 불렀다. 서 씨가 조 씨에게 5090만 원을 빌려줄 때 조 씨를 보고 빌려준 것인지, 아니면 조 씨가 내세운 다른 대출 명의자들을 믿었던 것인지를 따져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서 씨는 피고인 측 변호인의 심문에 모호한 대답을 반복했고 앞서 진술한 내용을 뒤집기도 했다. 이에 유 부장판사가 직접 심문했는데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그러자 유 부장판사는 “휴” 하고 한숨을 내쉰 뒤 혼잣말을 하듯 “늙으면 죽어야 해요”라고 독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재판장석의 마이크가 켜진 상태여서 이 말은 서 씨의 귀에 생생하게 들렸다. 이 사실이 알려진 24일 심상철 서울동부지법원장은 곧바로 유 부장판사에게 구두 경고했다. 유 부장판사는 지인들에게 “혼잣말이었는데 부적절한 언행으로 서 씨에게 상처를 줘 죄송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재판이 있었던 22일 오전 11시 서울동부지법에선 법관의 언행개선을 위한 세미나가 열렸지만 유 부장판사는 재판 일정이 있다는 이유로 이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았다. 서울동부지법과 대법원은 유 부장판사에 대한 징계 청구 여부를 검토 중이다.

파문이 확산되자 24일 오후 양승태 대법원장까지 나서 “(법관의) 부적절한 법정언행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국민께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다. 이 일로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증인에게도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사과했다.

법관의 막말 파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5월 인천지법에선 판사가 가사재판을 진행하다 “입은 터져서 아직도 계속 말이 나와요?”라고 말해 소송 당사자가 법관기피신청을 냈다. 2010년에는 40대 판사가 허락을 받지 않고 발언한 69세 원고에게 “어디서 버릇없이 툭 튀어나오느냐”고 질책했다. 올 1월 발표된 서울지방변호사회의 법관평가 자료에는 “20년간 맞고 살았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라” “당신이 알지 내가 알아?” “모르면 좀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고 준비서면을 내라” 등 일부 판사들의 부적절한 언행이 소개되기도 했다.

대법원은 막말 파문이 빚어질 때마다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한다고 강조했지만 일부 판사들의 오만하고 몰지각한 언행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2005년 9월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하며 법관의 언행 개선을 강하게 주문한 뒤로 각급 법원에서는 자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정기적으로 관련 세미나를 여는 등 자정노력을 해 왔다. 2010년 8월 서울중앙지법은 비공개로 진행되는 조정 과정에도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법관 언행 연구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기도 했다.

법조계에선 “판사의 막말은 일부 법관들의 권위의식과 특권의식이 재판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표출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다양한 사회경험 없이 수년간 사법시험만 준비해 법대에 오른 판사들이 일반 시민들의 감정과 처지를 이해하지 못해 발생하는 일이라는 지적이다.

한 변호사는 “일반 시민과 검사, 변호사 등의 의견을 물어 재판과정을 평가하고 이를 법관 연임심사에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그동안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쌓아온 법원의 노력이 한 사람의 말실수로 무너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법원은 분노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곳인 만큼 법관 스스로가 말씨와 행동에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채널A 영상] 법정 마이크 켜진 상태서 “늙으면 죽어야”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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