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화가·서울대 교수
하지만 하노이에 내려보니 ‘흑백대한늬우스’로만 접하던 그 옛날의 스산한 모습은 간곳없고 독특한 활기에 넘치는 새로운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인상적인 것은 한때 총부리를 마주했던 나라인 한국의 대기업 간판들이 유난히 자주 눈에 띈다는 점. 동행했던 원로사학자가 한국과 당시 월맹 간의 참상을 양국의 인명살상의 숫자로 설명해 주었지만 가물가물 현실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햇빛이 자글자글 끓고 있는 호찌민 시의 한 박물관 앞 갤러리에 크게 걸린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활짝 웃는 방문사진을 보면서 새삼 역사란 무엇인가 되뇌지 않을 수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공산 베트남을 방문하여 정부 수뇌에게 베트남전에 대해 사과하자 그 정부 수뇌는 “너희가 왜 미안하다고 하느냐, 우리가 이겼는데”라고 했다고 한다. 민족적 자존감을 잃지 않는 베트남인들에 대한 좋은 설명이 될 것 같다.
‘코리안 드림’위해 가족과 눈물의 이별
다만 한 가지 살짝 우려되는 것은 여지없이 그 나라에도 자본의 후폭풍이 거세게 덮쳐 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흡사 외계인의 침공처럼 거리 가득 쏟아져 나오는 오토바이 사이로 나부끼는 붉은 깃발들이 무색하게 명품점마다 사람들로 북적여 핏빛 이념도 끓어오르는 자본의 욕망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 사건은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있었다. 먼저 자리를 잡은 옆자리의 젊은 베트남 여인이 하염없이 눈물을 쏟고 있었다. 한국으로 시집오는 새댁인 것 같았고, 조금 전 가족과 작별을 한 듯싶었다.
얼굴을 감싸고 흐느끼는 야윈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덩달아 코허리가 찡해졌다. 한참을 울다가 창밖을 보던 여인은 이번에는 가방에서 부스럭거리며 비닐봉지를 꺼내더니 떡처럼 생긴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대기 시작했다. 내 다른 옆자리 한국인 승객이 그 모습을 보며 곧 기내식이 나올 텐데 왜 저렇게 먹어대는 거지, 중얼거릴 정도였다. 바로 그때였다.
차창으로 바라보는 승객들의 눈길을 뒤통수로 받으며 엄마 창피해, 제발 이러지 마요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비닐봉지가 내게 건네지고 나서야 어머니는 비로소 안도의 얼굴로 멀어지는 기차를 바라보았다. 그 어머니의 음식을 나는 기차가 수원쯤에 도달했을 때에야 먹곤 했던 것 같다. 너무 삶아 푸르스름해진 계란을 먹을 때마다 목이 메어오곤 했다. 엄마 미안해, 나도 이 베트남 여인처럼 그렇게 소리 없이 울면서 어머니 음식을 먹었던 것이다. 안다, 알고 말고다. 저 여인이 허겁지겁 먹었던 것은 단지 배고파 먹는 음식에 대한 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예쁜 기내식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먹었던 것이다.
문득 장차 저 여인도 자기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길 떠나는 자신의 아이에게 정성과 사랑의 음식을 챙겨주는 좋은 엄마가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선망의 코리안 드림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한국으로 오는 이 여인을 내 나라는 과연 잘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번져 나갔다.
이 여인을 잘 맞이할 준비는 돼 있나
그러다 불현듯 공중화장실이나 골목에 붙어 있던 전단 생각이 났다. 저렴한 비용으로 제3국의 신붓감을 속성 알선해 주겠다는 식의 민망한 내용들이었다. 한국에 시집온 저 여인들의 아이들이 어느덧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건만 이런 식의 배려 없는 광고지 내용은 더욱 기승을 부린다. 혹시라도 그녀의 아이들이 그런 문장을 대할 때면 ‘우리 엄마도 이렇게 한국에 왔나’라고 생각할 수 있으리라는 점은 왜 떠올리지 못하는 것일까. 사실 나와 당신들은 그 옛날 어머니의 비닐음식을 건네받은 지점으로부터 그리 멀리 와 있지 않다.
김병종 화가·서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