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세스 바리/박정윤 지음/347쪽·1만3000원·다산책방
다산책방 제공
전국 각지에서 조금씩 변형된 형태로 전해 내려오는 바리공주 설화. 작자 미상의 이 이야기는 ‘바리데기’ ‘오구풀이’ ‘칠공주’ ‘무조전설’ 등으로도 불려왔고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이 소설은 설화와는 큰 차이점이 있다. 설화에서 바리공주는 뒤늦게 자신을 찾은 부모를 만나 지극한 효행을 하지만, 소설 속 ‘바리’는 끝내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혼자 떠돈다. 그렇기에 더 현실적이고, 애잔하다.
작품은 설화를 인천의 척박한 동네로 옮겨온다. 연탄회사 사장의 일곱째 딸인 바리는 엄마에게 버림받고 산파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인천으로 온다. 기찻길 옆 허름한 집에서 바리는 정규교육도 받지 못한 채 밑바닥 인생을 산다. 소설은 초반 바리가 태어난 과거와 성장해가는 현재를 교직하며 잔잔히 흐른다. 차분하지만 얼마간은 지루하다.
설화에서는 바리공주가 불사약을 통해 타인을 살리는 역할을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타인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힘 있는 자들에게 억압당하며 좀처럼 삶의 희망을 찾기 힘든 서민들의 삶이, 스스로 죽음을 청할 만큼 위험하고 위태롭다는 것을 고발하는 듯하다.
이 작품은 제2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인 소설가 박범신의 평은 이렇다. “안정되고 감성적인 문체와 예민하게 끌어올린 문제의식, 우리네 밑바닥 삶의 디테일한 복원이 남다르다. 무엇보다 버림받은 ‘바리’의 사랑과 그 좌절이 매력적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