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슨 무어의 ‘등대’
올해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영국 작가 앨리슨 무어. 사진 출처 Salt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맨부커상이 2012년 최종 후보작을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이 놀랐다. 마틴 에이미스, 존 밴빌, 팻 바커 등 쟁쟁한 작가들을 물리치고 신출내기 작가 앨리슨 무어의 ‘등대(The Lighthouse)’가 최종 후보작에 올랐기 때문이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신인 작가의 데뷔작인 데다 노퍽의 소규모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 작품이 최종 후보작에 오른 데 대해 영국 문단은 갑론을박을 벌였다. 그러나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훌륭한 결정을 내린 심사위원들에게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하자’라는 평으로 심사위원들을 칭찬했다.(참고로 2012년 맨부커상은 본지 글로벌 북카페 6월 2일자에 소개된 힐러리 맨틀의 ‘시체를 대령하라’에 돌아갔다)
‘등대’의 주인공인 퓨스는 이혼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아버지의 모국인 독일로 여행을 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여행 중에 갖가지 상처와 아픔을 가진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인연을 통해 잘 알지 못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들을 퍼즐 맞추듯 끼워나간다. 퓨스의 어머니는 퓨스가 아주 어렸을 때 가출했고, 어린 퓨스에게 남겨진 것은 어머니와의 짧은 추억과 제비꽃 향이 나는 등대 모양의 독일제 향수병뿐이었다. 그 직후부터 퓨스는 향기에 이상할 만큼 집착하게 된다. 독일을 여행하던 퓨스에게 예전 기억을 하나씩 떠올리게 만드는 것도 바로 단편적 향기들이다.
한편 홀로 남은 아버지는 퓨스에게 냉정하고 난폭하게 굴었고, 이는 퓨스의 전반적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퓨스로 하여금 여자를 무서워하고, 여자 곁에 있으면 뭔가 모자라는 사람처럼 굴게 만든다.
작가 앨리슨 무어는 날카롭고 직설적인 글 솜씨로 퓨스의 굴욕적인 삶(결혼 첫날밤 혼자 잠을 자고, 가장 친한 친구가 자신의 부인과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도하고, 불혹이 다 된 나이에 이웃집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아버지에게 얻어맞는다)을 표현한다. 과연 퓨스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인디펜던트지는 이 소설을 가리켜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만남-뮤리엘 스파크로 시작하였으나 스티븐 킹으로 끝난다’고 평했다. 향기에 이끌려 과거의 트라우마를 기억해내는 장면은 순수문학적으로 묘사된 반면, 퓨스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벗겨나가는 부분은 스릴러 못지않다는 설명이다. 이 작품은 결국 맨부커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작가의 향후 행보에 대한 큰 기대를 모으며 영국 서점가의 인기작으로 떠올랐다.
런던=안주현 통신원 jahn8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