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없다면
―미겔 에르난데스(1910∼1942)
그대의 눈이 없다면 내 눈은
외로운 두 개의 개미집일 따름입니다.
그대의 손이 없다면 내 손은
고약한 가시다발일 뿐입니다.
달콤한 종소리로 나를 가득 채우는
그대의 붉은 입술이 없다면
내 입술도 없습니다.
그대가 없다면 내 마음은
엉겅퀴 우거지고 회향 잎마저 시들어가는 고난의 길입니다.
그대라는 별이 없다면 나는 어디를 향해 떠돌까요?
그대의 대꾸 없어 내 목소리는 자꾸 약해집니다.
바람결에 묻어오는 그대 냄새 좇아
희미한 그대 흔적을 더듬어봅니다.
사랑은 그대에게서 시작돼
나에게서 끝납니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날 수 있다. 그렇지만, 누가 그토록 사랑하는가?’로 시작되는 시 ‘비행(飛行)’의 시인이기도 한 미겔 에르난데스는 스페인 내전이 끝난 뒤 정치범으로 투옥돼,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감옥에서 죽었다. 슬픈 정열의 시들을 품고.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