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마크 뗀후 정부 견제장치도 떼내기?
최근 GM이 KDB산업은행에 한국GM 지분(17.02%) 전량을 인수하겠다고 제안한 데 대해 2009년 산은-GM 간 협상에 관여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GM이 3년 만에 경영 정상화에 성공하자 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것이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당시 GM은 미국 정부에 파산보호 신청을 내기 4개월 전인 2009년 2월 산은에 1조 원의 긴급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2008년 GM대우가 1조8000억 원의 대규모 적자를 내며 경영 위기를 맞은 뒤였다.
○ 산은, GM에 대담한 압박
2009년 9월 김영기 산은 수석부행장(현 KDB캐피탈 사장)은 협상 현장에서 만난 마이크 아카몬 당시 GM대우 사장(현재는 사임)에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협상에 앞서 민유성 산업은행장과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고위 관계자들이 미리 합의한 결과였다.
일순 아카몬 사장의 표정은 굳었다. 세계 1위 자동차 생산업체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아카몬 사장은 “다른 건 몰라도 인사권까지 양보할 순 없다”며 버텼다.
하지만 GM은 이듬해 4월 손동연 전무를 GM대우의 부사장 겸 기술연구소장으로 발탁했다. 정부 관계자는 “당시의 인사권 요구는 일방적인 해외 생산물량 이전을 막기 위한 내부견제용 포석이었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산은이 GM을 움직일 수 있었던 건 2009년 GM이 파산에 처한 데다 그해 10월과 12월 만기가 도래하는 총 7458억 원의 대출금 조기 상환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GM이 수세에 몰리자 정부와 산은은 “생산물량 보장과 경영참여 조건 등을 수용하지 않으면 추가 지원은 없다”고 압박했다.
그렇다고 GM이 일방적으로 끌려다닌 것만은 아니었다. 2009년 쌍용차 사태가 터지면서 한국 정부가 GM대우를 법정관리로 몰아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GM은 시간을 끌며 버텼다.
2년의 지루한 협상 끝에 양측은 2010년 말 △GM이 한국에서 철수하더라도 GM대우가 개발한 소형차 기술을 이전받아 생산할 수 있는 권리 △GM의 일방적인 경영권 행사를 견제할 수 있는 거부권 △산은의 이사 3명에 대한 추천권 등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자금 지원에 합의했다. 산은 관계자는 “당시 합의안으로 GM의 ‘먹튀’ 여지를 완전히 없앤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제어 능력은 확보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현재 산은은 “구조조정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당장 한국GM 지분을 팔 계획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계획에 산은의 한국GM 지분 매각 계획이 포함돼 있어, GM이 한국GM 지분 100%를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다. 정부 관계자는 “GM이 산은의 한국GM 지분 인수를 제안한 것은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둔 사전조치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동차업계 일각에서는 GM이 정부가 먹튀 방지를 위해 설정한 견제장치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