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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만난 사람/김순덕]진보정의당 대선후보 심상정

입력 | 2012-10-29 03:00:00

“나는 社民主義者이지만 몰락한 사회주의는 우리가 갈 길 아니다”




‘당당한 아름다움’이라는 자서전 제목처럼 진보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는 단단한 차돌 같은 인상이다. 빠른 말씨로 막힘없이, 때로는 답답하다는듯 답변하다가 미안하다는듯 미소짓는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대통령선거 후보 등록일(11월 25∼26일)까지 앞으로 28일. 야권 후보 단일화 논의가 문재인 안철수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창당한 지 8일된 진보정의당의 심상정 대선후보는 빠져 있다. 그는 “두 사람만 단일화해선 정권교체가 힘들다”며 “심상정이 포함돼야만 국민이 믿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상정 빼고 단일화’는 소용없다는 뜻이냐고 묻자 그는 “소용없는 건 아니지만… 위험하다”며 하하 웃었다.

―진보정의당 대선후보 출마 수락을 한 지도 8일 됐다. 하프마라톤 뛰려고 나오진 않았다고 했는데….

“완주 여부는 진보적 정권교체를 위한 연대 연합 과정에서 결정될 것이다. 야권후보 단일화 방안을 논의하기 전에 각 후보의 비전 및 정책과 실천에 대한 공통분모가 마련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단일화 논의前비전 등 공통분모 필요

―진보에 가까운 쪽에 설 것인가.

“그건 진보의 역할과 관계가 없다. DJP(김대중-김종필 단일화) 때도 권력을 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국민이 원하는 정치에는 실패했다. 총리 자리를 주고 자리를 나누자는 게 아니라 어떤 정책을 어떻게 실천해서 성공한 정권을 만들겠다는 건지가 중요하다. 두 후보에게 현대차 쌍용차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대한 공동성명과 비례대표 확대 같은 정치 개혁에 대한 국민회의도 제안해 놓았다. 이런 내용들이 먼저 합의돼야 각각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신뢰할 것이다.”

―문 후보는 쌍용차를 중국자본에 매각하도록 한 노무현 정부에서 비서실장을 했다. 그런 사람과 단일화할 수 있나.

“그래서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 의지와 정책에 대한) 분명한 확인이 필요한 거다.”

―안 후보의 정치개혁안에 대해 ‘공부 좀 더 해야 한다’는 식의 비판을 했는데….

“안 후보는 정당정치에 불신을 가진 국민이 불러낸 것이다. 안 후보의 정치개혁 열망도 매우 크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국회를 기업처럼 보고 법안을 하루에 몇 개 이상 생산 못한다고 감원하고 해고하는 식이면 결국 권위주의나 소수 엘리트 통치로 갈 수밖에 없다, 정치개혁으로는 번지수가 잘못된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단일화) 물밑접촉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물이 아직 안 흐른다. 국민의 정권교체 열망이 크므로 문이든 안이든 심이든 공동 책임주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책임이 따르는 문제니까 다들 깊은 고민 속에서 결단하지 않겠나.”

지금은 가시가 더 도드라지지만 한때 ‘진보의 붉은 장미’로 불렸던 통진당 이정희 대선후보까지 치면 세 사람의 여성 대선주자가 뛰는 셈이다.

“세계적으로 여성 리더십이 부각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 교육, 어르신 복지, 새집 증후군 같은 환경 문제처럼 여성들의 과제였던 일들이 이젠 정치의 중심의제가 되지 않았나. 이런 미래지향적 의제들은 진보의 태내(胎內)에서 나온 것들이고, 그래서 최초의 여성대통령은 진보에서 나오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 후보도 야권 단일화의 대상인가.

“유능한 여성정치인이라고 생각했다. 통합진보당을 만들 때도 이 대표를 믿고 결심했다. 국민의 기대와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특정 정파의 틀에 갇힌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다.”

―박 후보에게 ‘대통령이 되려면 역사에 대해 분명하면서도 명쾌한 화답을 하라’고 촉구한 적이 있다. 화답이 됐다고 보는가.

“5·16과 유신에 대한 사과를 보고 잘했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그 후 정수장학회를 둘러싼 논란이나 ‘노이즈 마케팅’이다 싶을 만큼 경제민주화를 놓고 몇 번씩 말 바꾸는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면서 실망이 컸다. ‘100% 대통령’ 되겠다더니 통합은 뒷전이고 오히려 보수색채 강화에 주력하지 않는가. 국민도 박 후보의 진의가 뭔지 실망할 것 같다.”

―진보(進步)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인데 우파는 진보가 될 수 없다는 말 같다. 심 후보가 말하는 진보란 뭔가.

“진보는 한마디로 하면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다. 우리 사회에서 보편화하고 당연시되는 것보다 앞서 변화를 말하고 앞장서 실천해 나가는 것이 진보이므로 보수와 대척점을 이룰 때도 있다. 진보의 가치는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사회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진보정치를 통해 만들고 싶은 사회는 ‘삶이 피어나는 사회’다. 생명의 존귀함이 충만하도록 일할 권리, 노동권을 바로 세우는 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진보는 얼리 어답터… 앞장서 변화 실천

진보정의당은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며, 더불어 사는 세상을 이룰 것’이라고 천명한 정당이다. 강령에는 ‘누구도 성별, 경제력, 나이, 출신지역, 학력과 학벌, 고용형태 등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고 평등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적극적 정책을 실시한다’고 명시돼 있다.

“국민이 느끼는 고통과 피로감이 두 가지다. 하나는 ‘(노력)해도 안 된다’는 점이다. 지금은 신랑 신부 스펙도 중요하지 않고 그 아버지가 누구냐가 중요하다고 한다.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평가받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건강한 사회다. 그렇지 못하니까 젊은이들이 부모를 원망하고 사회에 대한 원망으로 가고 있다. 또 하나는 ‘모든 짐을 개인이 짊어진다’는 점이다. 외동아들딸이 결혼하면 자기자식뿐 아니라 부모님 네 분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 누구나 다 짊어져야 할 짐은 좀 내려놓고, 그걸 사회가 해결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보편적 복지의 개념이다.”

―브라질의 ‘볼사 파밀리아’는 빈곤층에 초점을 맞춘 복지정책이어서 효과가 컸다. 우리도 재원이 한정돼 있으므로 사회안전망 확충 같은 복지 사각지대부터 해소해야 하지 않겠나.

“당연히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하고, 교육 의료 주거에서도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

―우리나라 예산이 300조 원 정도로 제한돼 있는데 어떻게 무상의료도 하고….

“왜왜왜왜(심 후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제한돼 있나. 왜 예산이!”

―예산을 어떻게 더 만들겠다는 건가.

“국민이 낸 세금을 놓고, 정책순위를 어떻게 하느냐가 노선 차이고 정당 차이다. 그동안 보수정당이 해온 기준을 정상으로 보는 것은 편향된 시각이다. 우리가 집권하면 예산을 아이들 교육, 무상의료를 위해 우선적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부자감세를 통해 90조 원을 부유층에게 주었고, 4대강 사업으로 30조 원 이상을 써서 국민이 분노했다. 그래서 박 후보조차 복지를 얘기하고 있는 것 아닌가.”

―정부가 모든 것을 떠맡을 만큼 유능하다고 보나.

“그게 기득권 세력의 불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일이 자본 간의 경쟁을 조정하는 것이고, 시장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에게 보호망을 만들어 주는 두 가지다. 우리나라는 재벌 독점체제의 불공정 사회를 만드는 데 국가가 역할을 했고, 시장에서 탈락한 사람들에게 되레 시장논리를 들이밀었으니 정상화를 해야 한다.”

진보정의당 강령은 ‘궁극적으로 재벌지배 경제체제를 해체한다’, ‘사회적 재분배 강화를 뒷받침해 자산 불평등을 해소한다’고 약속하고 있다. ‘진보정의당이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떠봤다.

집권땐 교육-무상의료에 예산 우선 쓸 것

“진보정당이 고난의 행군을 하는 이유는 유럽의 복지국가를 부러워만 할 게 아니라 우리도 그런 사회를 이룩할 수 있는 좋은 정당을 만들자는 바람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를 하고 있는 유럽형 복지국가들이 대부분 사회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그런 의미라면 나는 사민주의자(社民主義者)라고 할 수 있다. 사민주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KBS 여론조사에서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가 돼야 하느냐는 질문에 67%가 스웨덴식 복지국가를 들었다.”

―진보정의당이 추구하는 노선이 사회민주주의라고 써도 괜찮은가.

“아직은 아니다. 대선 이후 우리 당의 노선과 운영, 정책에 대해 지식인 사회나 진보진영 전체가 참여하는 토론과정을 거칠 것이다. ‘자산 재분배’를 놓고 사회주의가 아니냐고 질문한 것 같은데 몰락한 현실사회주의 이외에 어떤 사회주의가 또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 길은 우리 길이 아닌 게 분명하다.”

―대선공약 1호인 ‘노동자 경영참여 위한 5대 공약’을 보면 세계화에 맞지 않는 해법 같다. 독일이 노사합의로 해고를 자제한다고만 소개했지, 임금 인상도 자제했다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보수적인 틀에서 나온 질문이다. 한국 보수가 우물 안 개구리다. 진보가 글로벌하다. 유럽도 노동자 경영참가제도를 채택하는 나라가 생산성도 높다. 기업에 있는 돈을 돌리는 것이 경제민주화다. 내수에 기초한 탄탄한 중소기업을 키우고, 고기술 고단가 고임금으로 가도록 정부가 지원하자는 얘기다.”

진보정의당 창당대회 때 애국가는 왜 안 불렀느냐고 물어봤다.

“오해다. 후보수락 연설 TV중계가 오후 4시에 맞춰져 있어 진행자가 약식으로 국민의례를 진행한 것인데, 나도 강하게 잘못을 지적했다.”

北을 악마化하거나 온정주의로 보면 안돼

―애국가로 상징되는 정체성 때문에 심 후보가 통진당과 갈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편향적 친북행위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강하게 피력했다. 북한의 세습과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말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남북은 통일을 지향하는 관계에서 형성된 잠정적 특수관계’라고 돼 있다. 다만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한쪽에선 북을 악마화(化)하고 한쪽에선 온정주의적인 태도로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데 둘 다 남북 평화와 통일에 긍정적이지 않다고 본다. 남북합의에 기초한 인식 위에서 유능하고 정교한 외교활동을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

―심상정이나 진보는 좋은데 종북(從北)은 싫다는 사람들이 있다. 민노당 일심회 사건도, 통진당 이석기 의원과 관련해서도 ‘해당(害黨)행위’, ‘패권주의’라고만 지적했지 종북을 비판하지는 않았는데….

“나는 종북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종북이란 북한 정부나 노동당을 추종한다는 뜻인데 그런 분들은 사법 당국에서 처벌하면 될 것 같다. 사상적으로 말하자면, 북에 대해서 편향적이고 온정적인 입장을 가진 분이 많이 있다. 그런 입장에 대해선 저희가 비판적으로 바로잡아 왔다고 생각한다.”

―현충원 참배 때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묘소도 찾았나.

“현충원 현충탑에 참배했다.”

―함께 노동운동을 하던 남편이 지금은 모 주식회사 부사장으로 인명정보에 나오던데….

“기업인도 경영자도 아니고 그냥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남편과 아들의 격려와 헌신 덕에 어려운 진보정치를 하고 있다.”

―진보정의당은 학력과 학벌 차별을 반대하는데 아들은 재수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본인이 선택한 것이고, 나는 엄마노릇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아이의 교육과 인생에 대해 발언권이 없다. 대한민국 엄마들은 다 이해할 거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