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화하면서 카리스마 넘치던 ‘국민타자’의 미소가 사라졌다. 삼성 이승엽(36)은 3루 측 방문팀 더그아웃에 돌아온 뒤에도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쓰는 등 아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0-0으로 팽팽히 맞선 4회초 무사 1, 2루에서 2루 주자로 나가 있던 이승엽은 최형우의 우익수 플라이를 안타로 착각해 3루까지 뛰다 아웃됐다.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아시아 홈런왕’ 답지 않은 판단 착오였다.
이승엽은 한국시리즈 개막을 앞두고 공격적인 주루 플레이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SK 이만수 감독이 “깜짝 놀랄 만한 성적을 내겠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 “나 역시 깜짝 놀랄 만한 플레이를 보여주겠다. 상대가 나를 고의사구로 거르면 도루도 하고, 1루에서 홈까지 파고들겠다”고 응수한 것이다.
삼성에서 이승엽의 존재감은 크다. 특히 젊은 사자들에게는 기술뿐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 귀감이 돼 왔다. 정형식은 “이 선배가 김상수랑 나를 따로 불러 집중력 유지를 위해 가급적 경기 후 외박이나 외출을 삼갈 것을 부탁했다. 이후 경기에 대한 집중이 더 잘된다”고 했다. 평소 따뜻한 말 한마디로 후배들을 격려하던 이승엽이었기에 이런 이례적인 당부는 후배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다.
이승엽은 실수를 한 뒤 결연한 표정으로 경기에 집중하며 4타수 2안타(1삼진)로 활약했지만 경기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경기 직후 류중일 감독은 “타구 판단이 야구에서 가장 어려운 거다. 하지만 그 하나에 경기가 넘어가기도 한다”며 씁쓸해했다. 삼성으로서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선 이승엽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한 4차전이었다.
인천=유근형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