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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국보법 ‘찬양고무죄’ 死文化에 경종 울린 대법 판결

입력 | 2012-11-01 03:00:00


대법원이 인도네시아에서 일하면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해 김정일 생일축하 e메일을 보낸 김모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국가보안법 찬양고무 혐의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1심은 김 씨의 범죄사실을 모두 인정했으나 항소심은 “김정일 생일축하 메일을 작성한 것은 단순히 의례적인 행위”라며 “국가의 존립 안전을 위협한다고 할 수 없다”고 찬양고무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김 씨가 장기간 북한 공작원과 접촉해 온 사정을 고려하면 김정일 생일축하 메일도 적극적 찬양고무로 해석할 수 있다며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이번 판결은 찬양고무죄를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적용하거나 가볍게 처벌하는 하급심 판결에 경종을 울린 의미가 있다.

노무현 정권 당시 국회 다수당인 열린우리당의 국보법 폐지 시도가 좌절된 이후 국보법 폐지론자들이 사문화(死文化)를 목표로 집중 비판하는 것이 ‘찬양고무죄’ 조항이다. 노골적인 종북세력 인물들만 김일성 일가 찬가를 부르는 게 아니다. 국내 종북 웹사이트에서는 현역 장병, 부동산 중개업자, 항공사 기장 등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까지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글을 올렸다. 이들은 법정에서도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 만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를 외치며 찬양고무죄를 조롱했다.

찬양고무죄는 1990년 헌법재판소의 한정합헌 결정을 받고 이듬해 국보법 개정 때 “국가의 존립 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있는 자”로 제한됐다. 이후에도 헌법소원이 꾸준히 제기됐으나 헌재는 줄곧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공포정치 체제가 존재하는 동안은 광화문 사거리에서 김일성 만세를 부르는 행위가 표현의 자유일 수 없다.

그동안 법원 판결 중에는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행위에 대해 위험성을 낮게 평가해 무죄를 선고하거나 우리 사회의 개방성을 알리고 남북교류와 협력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집행유예 등의 선처를 한 경우가 있었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을 파괴하려는 세력에 선전 선동의 자유를 무제한으로 허용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