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시인
주인아주머니는 그냥 빈말이 아니라 내가 먹겠다고 하면 정말 같이 먹겠다는 듯 와서 의자에 앉으라는 눈짓을 했다. 아마 내가 객지 사람인 듯한데 찐빵으로 저녁을 때운다 싶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괜찮다고, 고맙다고 하면서 그들의 저녁 식탁을 살짝 훔쳐보았다. 공깃밥에 생선찌개와 나물 반찬 하나가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었다. 내외가 고단한 하루 일을 마무리하면서 다정히 저녁을 먹는 데에 내가 끼어들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내심 그들 내외와 저녁을 맛있게 같이 먹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누구하고 같이 나눠 먹을 사람도 없는데 찐빵을 열 개나 사서 가게를 나왔다.
사랑의 실천은 거창한데 있지않아
중학교 겨울방학 때 경주 외할머니 댁에 가자 할머니가 나를 보고도 그리 반가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호승이 니 왔나?” 하고는 그뿐이었다. 나는 못내 섭섭해서 할머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자다가 일어나 마당을 가로질러 변소에 갔다 오는데 누가 내 방 아궁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군불을 때고 있었다. 누군가 하고 보니 바로 외할머니였다. 가슴이 뭉클했다. 외할머니는 혹시라도 손자가 자는 방구들이 식었을까봐 첫새벽에 일어나 말없이 군불을 지피고 계셨던 것이다. 그때 나는 외할머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참으로 많이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랑에는 외할머니처럼 은근하게 드러내는 사랑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올해 아흔셋인 내 아버지의 사랑도 그렇다. 아버지는 지금 노환으로 대소변을 당신 스스로 가리시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계신다. 그런데도 내가 찾아뵈었다가 간다고 인사를 하면 가는 목소리로 “조심해서 가라” 하고 말씀하신다. 정신이 혼미해 말할 기력이 없으셔도 그 말씀만은 꼭 하신다. 한번은 치과 수술을 하고 한쪽 볼이 잔뜩 부은 채 아버지를 뵙자 “얼굴이 와 그렇노. 치과 갔다 왔나. 많이 아프제” 하시고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셨다.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예순 넘은 아들을 걱정하는 아흔 넘은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톨스토이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세 가지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그게 바로 세상을 사는 이유라는 것이다.
단 한 사람 위해 살아갈 가치 있어
사랑을 실천하는 길은 소박하다. 사랑은 꼭 거창하고 거대한 데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정작 그런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다. 지하철에서 등에 아기를 업고 구걸하는 여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을 때도 있다. 정신지체 장애인들을 위해 연 북콘서트에서 “마음은 어디에 있어요?” 하는 질문을 받고 “마음은 마음에 있어요” 하고 대답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마음은 당신에게 있다”고 대답했어야 옳았다. 그 사람은 그런 말을 듣고 싶어서 그런 질문을 했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단 한 사람을 위해서도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데, 내게 살아갈 가치를 주는 사람을 내가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지 깊어가는 이 가을에 생각해본다.
정호승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