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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의 ‘직필직론’]법정에 카메라를 허(許)하라

입력 | 2012-11-01 03:00:00


손태규 단국대 교수

판사도 인간이다. 그들도 성질을 못 이겨 법정에서 막말하고 반말하며 졸기도 한다.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상담 사례집’에는 39세 판사가 69세 피고에게 “버릇없다”라고 말한 예가 나온다. 10월 23일 법률소비자연맹이 펴낸 ‘대한민국 법원 법정 백서’에 따르면 조는 판사, 재판에 지각하는 판사가 적지 않다. 한국뿐 아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세계 여러 나라 판사들도 마찬가지다.

막말하고 졸고 지각하는 판사 많아

그러나 판사도 인간이라고 해서 법정에서의 부적절한 행동이 관용될 수는 없다. 사법부는 독립성이 생명이라는 말이 판사들 마음대로 행동하는 무제한의 자유를 준다는 말은 아니지 않은가. 사법부의 독립은 국민의 신뢰에 바탕을 두어야 하며, 판사들은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높은 도덕성을 가져야 한다. 사법부의 독립은 사법부가 져야 할 책임이 동반할 때 균형을 이룬다.

어느 나라든 ‘불량 법관’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의 사법부 태도와 방식은 한국과 참으로 다르다.

미국 등이 판사들의 태도를 개선하기 위해 택한 방식의 하나는 법정 내 언론의 사진 및 텔레비전 카메라 취재 허용이다. 법정에서 독재자, 폭군 노릇을 하거나 잠에 취한 판사 들은 카메라를 통해 국민에게 알려질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기자들이 쓰는 기사로 묘사할 수 없는 판사들의 무례하고 무성의한 모습을 카메라는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2월 미국 텍사스 주 교육법원 래리 크레독 판사가 법정에서 조는 모습이 텔레비전 뉴스에 나갔다. 크레독 판사는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자폐아 부모가 법원에 제기한 공립고교의 교육 방식 문제에 관해 사흘간의 청문회를 주재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졸았다. 이에 분노한 부모는 그를 깨우기 위해 헛기침을 하고 물병을 바닥에 떨어뜨리기까지 했지만 소용없었다. 참다 못해 휴대폰 카메라로 조는 크레독 판사를 촬영해 언론에 제공한 것이다. 여론은 들끓었고 크레독 판사는 결국 사임했다.

비록 언론의 카메라가 직접 촬영한 것은 아니었지만 카메라와 언론이 판사의 이상한 행동에 대한 훌륭한 교정 수단임을 보여 준 경우다. 미국 제9순회법원 알렉스 코진스키 수석판사도 “(카메라 때문에) 판사들은 졸음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고, 자신들의 결정을 설명하는 데 좀 더 신중해질 수 있으며, 자의적인 결정이나 지나치게 느슨한 재판 운영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은 50개 주 모두가 전면 또는 일부 법원에 대해 카메라 진입을 허용하고 있다. 연방법원만은 예외다.

美선 카메라 허용후 공정성 높아져

미국이 법정 내 카메라를 허용한 것은 판사들의 태도를 바로잡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다. 그리고 법원의 투명성과 재판의 공정성을 높여 법원과 법관의 권위와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다.

미국 법정에 언론 카메라가 허용되는 과정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90여 년 동안 수많은 논의와 연구, 법정 모의실험을 통한 결과다. 1975년 플로리다 주는 미국에서 가장 먼저 1년 동안의 모의실험을 한 뒤 카메라가 재판을 방해하지도, 판사나 피고 등 누구에게도 심리적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고 법정 내 카메라 진입을 허용했다. 이후 전국으로 퍼졌다.

영국은 1923년부터 법정에서 카메라 촬영을 금지해 왔지만, 2011년 9월 영국 정부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대법원을 제외한 모든 법원에서 촬영 및 방송을 허가한다고 발표했다. 영국 역시 치열한 논의와 연구 끝에 2004년 첫 시험 재판을 실시했다.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 스코틀랜드, 노르웨이, 스페인 등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제한된 형태로 카메라의 법정 진입을 허용하고 있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은 시험 연구를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사법부는 언론 카메라의 법정 취재를 사실상 철저하게 봉쇄하고 있다. 실제 재판 과정이 아닌, 판사나 피고가 법정에 들어서는 모습만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촬영토록 할 뿐이다. 국민은 12·12와 5·18사건 등 역사적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텔레비전으로 지켜볼 수 없었다. 생생한 역사의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1973년 만들어진 법원조직법 내 촬영 등에 관한 조항은 40여 년간 요지부동이다. 다른 나라 법조계는 100년 가까이 숱한 논의와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한국은 사법부 차원에서 연구와 논의를 전혀 하지 않았다. 미디어 기술 발전 등 시대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와 미국 등의 결정적 차이는 카메라 허용 여부나 정도의 차가 아니다. 논의와 연구가 있고 없음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사법부는 왜 법정 촬영 및 방송을 그토록 완강하게 반대하는가? 사법부는 그 정당한 명분과 치밀한 법리를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그것은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폐쇄적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한국의 법관들은 언론의 카메라 취재 허용은커녕, 그것을 언급하는 것조차 꺼리고 있다.

카메라 문제뿐 아니다. 현재 한국의 법관들 중에는 블로그나 트위터 같은 첨단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활용해 개인의 정치 견해와 주장, 재판 내용을 밝히기도 했다. 자신들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으며, 소셜 미디어를 통해 방어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면서 말이다.

국민의 알권리 위한 최소한의 예의

그러나 미국, 영국, 호주 등의 법원과는 달리 한국 기자들은 법정에서 블로그나 트위터를 이용할 수 없다. 휴대전화, 노트북 등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 강국이라 자부하는 한국의 언론은 법정 취재에 관한 한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판사들은 법정 바깥에서 자신들의 첨단 커뮤니케이션 기기 사용을 정당화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기자들이 이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토의하고, 연구해야 한다. 자신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는 최신 기술을 사용하는 것에 관대하면서 그 기술이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사용되는 것에는 주저하는 한국 판사들의 모습은 지극히 이중적이다.

법정에서 막말을 하는 안하무인 판사들이 없어지지 않는 것은 그런 판사들의 이기적 풍토 때문이 아닌가. 언론의 카메라가 법정 문턱을 넘어서게 함으로써 사법부는 한층 겸손하고 친근한 모습으로 국민에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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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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