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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커룸]복도에 선수 짐… 한숨만 나오는 잠실 더그아웃

입력 | 2012-11-01 03:00:00


700만 관중 시대의 서글픈 현실 SK의 1루 쪽 더그아웃 복도에 선수들의 가방이 늘어서 있다. 700만 관중을 돌파한 한국 프로야구에서 국내 최고의 구장인 잠실구장에서 볼 수 있는 서글픈 현실이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SK와 삼성의 한국시리즈는 5차전부터 중립지역인 잠실구장에서 열린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만5000석 이상의 구장을 가진 서울 연고팀이 한국시리즈에 오르거나, 2만5000석 이상의 구장을 가진 지방 연고팀끼리 붙지 않는 한 5∼7차전을 잠실에서 치르도록 했다. 최대한 많은 팬이 경기장을 찾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SK와 삼성, 그리고 잠실의 원주인인 두산과 LG는 중립경기가 마냥 좋지만은 않다.

정규시즌 1위 삼성은 중립경기로 잠실에서 열릴 SK와의 한국시리즈 5∼7차전에서 더그아웃을 선점할 권리가 있다. 삼성은 3루 쪽 더그아웃을 골랐다. 3루 쪽은 방문 팀 라커룸이 따로 없어 더그아웃 복도에 선수들 가방을 늘어놓아야 한다. 탈의실도 없어 선수가 구단 버스나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모두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은 당연히 없다. 삼성 관계자는 “외국인 선수가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태블릿PC를 만지작거리는 걸 볼 때마다 부끄러워진다”며 한숨쉬었다.

그래도 삼성이 3루 쪽을 고른 건 1루 쪽을 써도 이런 불편함이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중립경기 때는 홈 팀 라커룸을 쓸 수 없다. 그래서 그나마 잠실에서 방문경기를 할 때 늘 써 와 익숙한 3루 측을 골랐다. 안방인 대구구장에서도 3루 쪽을 더그아웃으로 쓰는 점도 고려했다.

SK도 울상이다. 잠실구장에서 늘 3루 쪽에서 경기장을 바라보다 1루로 옮기게 돼 생긴 시야의 차이는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열악한 시설은 답답하기만 하다. 3루 더그아웃과 마찬가지로 복도에 짐을 늘어놓아야 하는 데다 원래 1루 쪽이 홈 팀을 위한 공간이라 중립경기 팀이 마음 편히 쓸 공간이 거의 없다. SK 이만수 감독조차도 따로 감독실이 없어 두산의 선수휴게실을 임시로 감독실로 이용했다.

두산과 LG도 남의 잔치가 자신의 안방에서 열리는 게 탐탁지 않다. 두산 관계자는 “이제 프로야구 인기도 많이 올라갔는데 굳이 잠실에서 중립경기를 해야 하나 싶다”며 씁쓸해했다.

중립경기는 지방 구장의 열악한 환경 탓에 생긴 제도다. 보다 좋은 구장에서 큰 경기를 치르자는 취지다. 하지만 더그아웃에 늘어서 있는 선수들의 짐을 보면 잠실구장이 그럴 자격이 있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6월 잠실구장에서 공청회를 열어 “9회말 2사 후 만루홈런을 치겠다”며 야구장 시설 개선을 약속했다. 하지만 KBO 관계자는 “그때 이후 별다른 진전이 없다”며 한숨쉬었다. 박 시장의 그 ‘만루홈런’은 언제 터지는 걸까.

조동주 기자 dj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