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동준비
―최영미 (1961∼ )
그림자를 만들지 못하는 도시의 불빛.
바람에 날리는 쓰레기.
인간이 지겨우면서 그리운 밤.
애인을 잡지 못한 늙은 처녀들이
미장원에 앉아 머리를 태운다
지독한 약품냄새를 맡으며
점화되지 못한 욕망.
내 머리에 손댄 남자는 없었어.
남자의 손길이 한 번도 닿지 않은 머리를 매만지며
안개처럼 번지는 수다……
겨울을 견딜 스타일을 완성하고
거울을 본다.
머리를 자르는 것도
하나의 혁명이던 때가 있었다.
생머리가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표식이던,
단순한 시대가……
‘인간이 지겨우면서 그리운 밤.’이라고 까칠하게 정곡을 찌르는 게 최영미답다. 누구를 만나도, 혼자 있어도, 우리는 외로운 개별자다. 그 원초적 고독을 잘 알지만, 그립고 외로운 걸 어쩌랴. 늙은 처녀들만큼이나 이 계절이 외로운 사람들이 있다.
‘내 어깨에 기댄 여자는 없었어’, 늙은 총각들은 탄식하리. 여자들이 미장원을 갈 때 그들은 어디를 갈까? 여자들이 거울을 볼 때 남자들은 아마도 통장 잔고를 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