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현역 ‘파우스트 장’ 괴테 곁으로…
고 장민호 씨는 세월이 흐를수록 진가가 드러나는 배우였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가장 먼저 대사를 외우고 깊이 있는 인물 분석으로 후배 배우들의 모범이 됐다. 동아일보DB
지난해 2월 재단법인으로 새롭게 출범한 국립극단이 서울 용산구 서계동에 새로 극장을 열고 ‘백성희장민호극장’이란 이름을 붙였을 때 고 장민호 씨가 했던 말이다. 국립극단의 ‘살아 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는 두 원로배우는 개관작인 ‘3월의 눈’ 주역으로 나란히 무대에 올랐다.
2일 오랜 동료를 떠나보낸 백성희 씨는 장례식장에서 영정 사진을 말없이 바라보다 눈물을 흘렸다. “먼저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니 내 모든 의식이 정지된 것 같았어요. 죽을 것 같더니 눈물이 나더군요. 나도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의 기억 속 고인은 ‘건실한 남자’였다. “배우로서 맡은 배역은 책임지고 소화했고, 자신이 잘못한 부분은 진심으로 아파하는 사람이에요. 허튼짓 하지 않고 배우를 고집하면서 가족을 부양했죠.”
배우 손숙 씨는 “작품에 대해서는 완벽하고 후배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분이셨다. 연극이 인생의 전부였던 분”이라며 하염없는 눈물과 함께 고인을 추모했다. 배우 신구, 강부자 씨도 빈소를 찾았다.
2일 별세한 원로 연극배우 장민호 씨의 서울 아산병원 빈소에는 ‘영원한 현역 배우’인 고인을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졌다. 배우 강부자 씨가 조문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997년 국립극단이 그의 연기 생활 50주년 기념 공연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그는 주저 없이 파우스트를 골랐다. 그는 “파우스트 역을 평생 네 번씩이나 하는 행운의 사내는 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평생을 학문에 바쳤으나 지식과 삶의 허망함에 전율하며 새롭게 정염을 불태우는 파우스트. 나 또한 생을 송두리째 던져 넣은 연극 무대에서 파우스트의 그 처절한 마음을 되새겨볼 작정입니다.”
고인은 연극뿐만 아니라 라디오 성우, TV 탤런트, 영화배우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30년 가까이 성우협회 이사장(1966∼1995년)을 맡았으며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제작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TV문학관’과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등에 출연했다.
“화가는 그림을 남깁니다. 소설가는 책을 남기지요. 다 흔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연극은 그렇지 못해요. 현장 예술이기 때문에 지나면 그만입니다. 제 배우 인생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때 그 무대’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온 세월이었지요.”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