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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남성호르몬의 시대는 가고 일하는 여자들이 왔다… 여성의 지배가 시작된다

입력 | 2012-11-03 03:00:00

◇남자의 종말/해나 로진 지음·배현, 김수안 옮김/400쪽·1만5000원·민음인




나는 30대 평범한 ‘주부아저씨’입니다. 낮에는 20개월 된 아들을 돌보고 밤에는 야간 로스쿨을 다니지요. 가끔 집에 널린 물건들을 치우곤 하지만, 빨래나 요리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아내가 알면 기절초풍하겠지만 두드러기가 난 아들에게 양동이에 찬물을 가득 채워 놓고 “저런, 화끈거리겠군. 터프가이, 어서 들어가!”라고 시킨 적도 있어요.

아내는 유명 로펌에 취직해 매주 80시간을 일합니다. 처음 아내에게 로스쿨 진학을 제안한 건 나였어요. 전액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그녀는 줄곧 우수한 성적을 받더니 연봉 15만 달러짜리 일자리를 거머쥐었습니다. 나는 돈을 안 벌어도 상관없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어요. 아내가 우리 가족의 부양자니 의당 뒷바라지를 해야 합니다.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남자’라고요? 천만에요. 이기고 싶으면 타석에 제일 잘 치는 타자를 내보내야죠. 누가 우리 집에 쌀을 더 가져올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려야 살아남는 겁니다.

요즘은 여성이 룰을 만들고 남성은 따르는 세상입니다. ‘왈가닥 루시’(1950년대 미국 CBS가 방영한 시트콤)에서 주인공 부부가 서로 직업을 바꾼 뒤 일과를 마치고 부인이 “나는 집에 돈 벌어다 주는 일에는 소질이 없네요”라고 하던 건 다 고릿적 이야기일 뿐이에요.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현대적인 결혼이나 젠더 역할에서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2009년 미국 일자리 중 절반가량을 여성이 차지하면서 남성을 앞질렀어요. 인도 빈민지역 여성들은 남성보다 영어 습득속도가 빨라 글로벌 콜센터 수요를 충족하고 있고, 중국에서는 여자들이 민간 기업의 40% 이상을 소유합니다.

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 여성들이 늘면서 새롭게 등장한 사회현상들도 많습니다. 마음은 주지 않고 일회성으로 성관계를 맺고 끝내는 ‘훅업(hookup)문화’가 대학가 여성들 사이에 팽배하고 때때로 그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남성도 존재합니다. ‘자기 돈으로 방세 다 내고, 먹고 싶은 거 사먹고, 옷도 사 입어서 남자 없이도 잘 산다’며 자신 없으면 오지 말라 경고하는 유행가 가사들이 넘쳐난다는 점, 전반적인 남성 체포율이 줄어드는 대신 여성 체포율과 범죄율이 모든 연령대에서 꾸준히 증가한다(미국 기준)는 점도 주목할 만하죠.

책 제목이 도발적인가요? 내용은 더 파격적입니다. 한국의 골드미스, 중국의 ‘성뉘(剩女)’를 멋지다고 찬탄하기 위해, 혹은 빛 좋은 개살구라고 지적하기 위해 쓴 책은 아닙니다. ‘남성들이여 들고 일어나라’며 부추기는 건 더더욱 아닙니다. 외려 현실을 직시하게끔 도와주려는 책입니다. 성공한 여성들이 겪는 딜레마를 통해 남성이 살아갈 방도를 모색할 수 있습니다. ‘남자의 종말’은 남성성, 가부장제가 지배하던 자리를 유연한 여성성과 가모장제가 대신한다는 의미입니다. 대학에서 페미니즘 이론 수업을 한두 개쯤 듣고 주디스 버틀러 정도 읽은 ‘배운 남자들’에게 고합니다.

“유연해집시다, 남성동지들. 안타깝지만 마초의 시대는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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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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