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양 환전소 여직원 살인’ 주범 태국서 검거
2007년 안양 환전소 강도 살인 용의자인 최세용 씨가 범행 전 찍은 증명사진(왼쪽). 오른쪽은 최 씨가 올해 태국에서 도피생활을 할 때 모습. 경찰청 제공
국경관리소를 나간 그에게 이민국 직원 5명이 따라붙었다. 태국 주재 한국 경찰관이 “여자가 나타나면 잡지 말고 몰래 추적해 달라”고 당부한 터였다. 2명은 시 씨가 탄 버스에 동승했고 3명은 승용차로 뒤따랐다. 버스에서 내린 그는 치앙라이 외곽의 한 커피숍에 들어갔다. 모자를 쓴 채 귀퉁이에 앉아 있는 한 남자를 향했다.
5년 전인 2007년 7월, 경기 안양시 비산동의 환전소에서 20대 여직원 A 씨는 최세용 씨(46) 일당에게 ‘신고하지 않을 테니 살려만 달라’고 빌었다. 현금 1억 원을 빼앗아 환전소를 나서는 순간 최 씨는 여직원이 몰래 긴급 신고 버튼을 누르는 장면을 봤다. 발길을 돌린 최 씨는 여직원을 흉기로 잔인하게 살해했다.
피해자 윤모 씨는 그해 여름 마닐라 공항에서 최 씨 일당을 만났다. 그들은 “한국 분을 만나니 기쁘다. 형 동생 하자”며 환대했다. 하지만 공항 앞에 세워진 승합차에 함께 타자마자 총과 칼을 꺼냈다. 윤 씨는 4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주택 지하로 끌려가 폭행당할 때 이들이 총을 두 발 쐈고 한 발은 어깨를 스쳤다”며 “빨랫줄로 온몸이 묶인 채 맞았고 머리에서 피가 쏟아져 눈을 뜰 수 없었다”고 말했다. 최 씨 일당은 윤 씨 지갑에서 그의 초등학생 아들 사진을 꺼내 보며 “1000만 원을 당장 보내지 않으면 너도 죽이고 네 아들도 불러서 죽일 테니 가족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최 씨 일당은 이런 수법으로 이후 4년간 13명에게 2억7000만 원을 뜯어냈다. 지난해 9월 납치된 홍모 씨 등 피해자 중 2명은 아직 살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피랍 과정에서 최 씨 일당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어렵게 공범 2명을 잡았지만 최 씨의 행방은 묘연했다. 5월 국내에 송환된 공범 김모 씨(40)는 “최 씨는 신출귀몰하는 양반이다. 능력껏 잡아보라”며 조롱했다. 지난달 필리핀에서 잡힌 또 다른 공범은 현지 유치장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경찰은 최 씨의 아내를 주목했다. 그가 바로 시 씨다. 시 씨는 올해 1월 한국에 들어와 최 씨 동생 명의로 여권을 만든 뒤 5월 태국으로 떠났다. 며칠 뒤 최 씨 동생 여권을 소지한 사람이 태국에 들어온 사실도 확인됐다. 최 씨가 동생 여권으로 신분을 속이고 태국에 숨어 지낸다는 추론이 가능했다.
다시 3개월 뒤인 이달 3일, 우리 경찰은 방콕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태국 이민국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시 씨가 탄 버스를 쫓고 있다”는 전화였다. 이민국 직원들이 이날 시 씨를 따라 커피숍에 들어섰을 때 시 씨와 마주앉은 남자는 사진과 달리 뿔테 안경을 쓰고 수염을 기른 얼굴이었다. 직원들이 그의 팔을 붙들며 말했다. “최세용 맞지?” “저는 최○○인데요.” 최 씨는 동생 이름을 대며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때 커피숍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이민국 직원에게 우리 경찰의 전화가 걸려왔다. “들키면 분명히 동생 이름을 댈 겁니다. 무조건 잡으세요.” 최 씨의 도피 행각은 5년 4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태국 경찰은 최 씨를 여권 위조 혐의로 조사한 뒤 한국으로 추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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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