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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럭 코치, 포근 감독 이렇게 잘 맞을줄이야

입력 | 2012-11-06 03:00:00

문경은 감독-전희철 코치 대학 땐 둘도 없는 라이벌… 자존심 센 데다 성격은 판이
그들이 뭉친 SK, 잘 굴러간다… 어느덧 단독선두, 남 보란듯




이 두 사람. 다들 감독, 코치 관계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나이 차도 별로 없고 대학 땐 라이벌이었다. 하지만 둘은 코칭스태프로 호흡을 맞춘 지 두 시즌 만에 만년 하위이던 SK를 강팀으로 바꿔놨다. 경기 도중 작전을 지시하는 문경은 감독(오른쪽)과 전희철 코치. 동아일보DB

문경은 SK 감독(41)이 지난해 4월 대행 꼬리표를 달고 SK 사령탑이 됐을 때 그를 보좌할 수석코치가 전희철(39)이라는 사실에 적지 않은 농구인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팬들도 그랬다. 문 감독과 전 코치는 1990년대 한국 농구의 전성기를 이끈 스타다. 둘은 같은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연세대를 나온 문 감독과 고려대를 졸업한 전 코치는 대학 시절 라이벌이었다.

“감독님, 오늘은 코치 아닙니다!” 2011년 6월에 열린 ‘추억의 라이벌, OB 고연전’에서 전희철 코치(왼쪽·고려대)가 문경은 감독(연세대)을 악착같이 수비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둘 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 자존심이 센 데다 나이 차가 두 살밖에 되지 않아 둘의 조합이 제대로 굴러가기 힘들 것이라는 견해가 있었다. 특히 전 코치는 선수 시절부터 강성 이미지가 따라다녔다. 10개 구단 감독 중 막내인 문 감독은 “지금도 ‘전 코치가 (너한테) 잘하냐’는 질문을 지인들로부터 종종 받는다”고 했다. 문 감독은 늘 짧고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다들 잘 몰라서 그런 것 같은데 전 코치는 잘한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는 선입견이 따라다니던 ‘문전 콤비’가 이끄는 SK가 올 시즌 프로농구 초반 돌풍을 일으키면서 보란 듯이 단독 선두(8승 2패)를 달리고 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성적이다. 문 감독도 “6강을 목표로 했다. 이렇게 잘할 줄은 솔직히 몰랐다”고 했다.

전 코치는 “경기를 뛰는 건 선수들인데 코치가 관심을 받는 건 부담스럽다”면서도 문 감독과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비친 데 대해서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전 코치는 “관계를 속속들이 잘 몰라서 그럴 것이다”라고 했다. 둘은 1988년 주니어 대표팀을 시작으로 2002년까지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2003년 결혼한 전 코치가 지금 살고 있는 경기 용인시 수지구에 신혼집을 마련한 것도 “우리 동네로 오라”는 문 감독의 권유 때문이었다.

SK의 한 직원은 “성격만 놓고 보면 문 감독과 전 코치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 다른 성향이 팀을 이끌어 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포근한 ‘형님 리더십’의 문 감독은 성격상 선수들에게 모진 소리를 웬만해선 하지 않는다. 참다 참다 한 방에 몰아치는 스타일이다. “문경은을 화나게 했다면 그놈은 진짜 나쁜 놈”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농구판에 있을 정도다. SK 허남영 코치도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 스타일이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면서 다그치는 ‘시어머니’ 역할은 전 코치의 몫이다. 전 코치는 “감독이 싫은 소리를 안 해서 대신 나서는 게 아니다. 그냥 내 성격상 지적할 건 그때그때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선수들이 워낙 다들 알아서 잘해 주니 버럭 화를 낼 일도 없다”고 말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