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수석논설위원
대선후보의 입시 단순화는 시대 역행
1990년대 후반 대학 진학은 수능 성적이 좌우했다. 수능 점수가 높은 순서대로 명문대에 입학했다. ‘수능 점수로 학생들을 줄 세운다’는 비판이 커졌다. 김영삼 정권에서 마지막 교육부 장관이었던 이명현 전 서울대 교수는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1998년 3월 이해찬 신임 교육부 장관의 전화를 받았다. “전임 장관의 가르침을 받겠다”며 만나달라는 요청이었다. 이해찬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은 ‘여러 줄 세우기’를 좋아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수능 점수로만 학생을 뽑지 말고 다양한 기준으로 대학 신입생을 선발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김대중 정권의 정책 집행 방식은 어설펐어도 다양한 학생을 다양한 기준으로 뽑는다는 원칙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대학 역시 이런 방향으로 전형 방식을 진화시켜 온 것이 사실이다. 서울대가 1998학년도 입시부터 전국 고교로부터 학생 2명씩 추천받아 처음 시작한 고교장 추천 전형은 국내 지역균형 선발의 출발점이었다. 이 전형이 전체 입학정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98학년도에 8%였으나 올해에는 23.9%로 크게 늘었다. 대학도 사회와 소통하며 살아남으려면 ‘다양한 인재 선발’ ‘기회 균등’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거역할 수 없을 것이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대입 단순화 계획은 정부가 개입해 강제로 입시 종류를 줄이겠다는 의미다. 문 후보는 “대입 전형을 수능 내신 특기적성 기회균형 어느 한쪽만으로 선발하도록 단순화하겠다”고 밝혔다. 다양화 쪽으로 진행돼온 입시의 물줄기를 되돌리는 일이다. 무엇보다 후보 캠프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한 뒤 공약을 내놓고 있는지 의문이다.
현실 알고 공약 내놓으라
전형 방식이 3000개가 넘는다지만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학생부, 논술 또는 면접, 특기적성 세 가지 골격으로 이뤄져 있다. 학생부 성적을 중시하는 전형이 있고 논술을 치러 선발하는 전형, 어학 등 특기적성으로 뽑는 전형이 그것이다. 전형 방식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대학마다 반영 비율을 다르게 잡거나 논술과 학생부를 함께 반영하는 등 선발 기준을 혼합하는 탓이 크다. 큰 틀은 엇비슷하지만 대학입시를 관리하는 대학교육협의회 같은 단체가 수험생에게 관련 정보를 자세하고 친절하게 제공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대선후보들이 여기에까지 나설 일은 아니다.
문재인 후보는 교육 공약을 통해 대입제도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겠다고 밝혔고 안철수 후보도 대입제도 개혁 방향을 추후 논의해 발표하겠다고 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세부적인 교육 공약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누가 당선돼도 대입제도에 손질을 가할 게 분명하다.
문 후보 측이 10여 년 전 자신이 속한 민주당이 물꼬를 텄던 ‘대입 다양화’를 순식간에 뒤집은 것처럼 대입제도에 대한 논의는 시류에 따라 오락가락했다. 어느 때는 수능을 중시했다가 학생부를 요구하기도 하고 다시 논술을 앞세우는 식이었다. 명분은 ‘사교육 줄이기’에 있었지만 사교육비가 해마다 증가한 사실에서 드러나듯이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정치권은 유권자의 표를 얻을까 싶어 대입제도를 고치려 하지만 원래부터 답이 없는 일이다. 세계 어느 나라나 수능과 같은 국가시험, 학생부, 논술, 입학사정관 등 4가지 방식을 조합해 대학 신입생을 뽑는다.
정부가 입시에 또 손을 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부 역할은 오히려 입시 밖에 있다. 세계적인 대학을 많이 육성해 입시 경쟁이 분산되도록 하고 청년들에게 다양한 진로를 열어주는 일이다. 그러면 입시 문제는 점차적으로 해소될 것이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