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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이장희의 스케치 여행]성균관

입력 | 2012-11-10 03:00:00

흩날리는 황금 조각, 황홀한 금빛 세상




종로구 혜화동 근처에서 일을 끝내고 거리로 나서니 길가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가을을 고스란히 담은 그 아름다움에 빠져 걷다 보니 어느새 성균관 정문까지 발길이 닿아 있었다. 담벼락 너머에도 거대한 은행나무가 보였다. 가을볕 아래 노란 은행나무는 황금도시 엘도라도처럼 성균관을 황홀한 금빛으로 만들어 놓았다. 나는 꿈을 꾸는 이방인처럼 그 빛에 이끌려 경내로 들어섰다. 그곳에 성균관만의 근사한 가을이 기다리고 있었다.

배움의 열의로 자란 은행나무

성균관은 조선의 국립대학이었다. 고려의 국자감을 시초로 하고 있으니 현존하는 대학 중 세계 최고(最古)라 할 수 있겠다. 유교를 숭상했던 조선의 최고(最高) 교육기관답게 이 곳에서 당대의 수재들이 숙식을 해가며 유학을 공부했다. 그들은 유생(儒生)이라 불렸다.

문과 응시에 많은 편의를 제공 받기도 했던 유생들은 강도 높은 수업을 받으며 엄격하게 생활했다. ‘어그러짐을 바로잡아 고르게 한다’는 ‘성균(成均)’의 의미를 실천하듯 유생들은 왕에게 직접 상소를 올리거나 수업을 거부하는 ‘권당(捲堂)’을 하며 나라의 부당한 처사나 바르지 못한 정치에 대해 자신들의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권당을 한 횟수는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될 정도였다. 흥미로운 점은 조선의 중흥기라 할 수 있는 영·정조시대에 권당이 가장 많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회가 발전해가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성균관은 크게 두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앞부분은 성현들에게 제사를 지내던 공간이고, 명륜당을 중심으로 한 뒷부분은 공부를 가르치던 공간이다. 이를 전묘후학(前廟後學)이라 한다. 교육 공간이 제사 공간 앞에 있던 지방의 향교들과는 차이가 나는 점이다. 양쪽 영역에는 모두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다. 예부터 서원이나 향교에 은행나무가 있었던 이유는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문헌상의 내용 때문이다. 학문을 닦는 곳을 행단(杏壇)이라 부르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성균관의 은행나무는 1519년(중종 14년), 당시 성균관 수장이었던 대사성 윤탁이 심은 것이라고 한다. 500여 년 된 오래된 나무들이다. 가지는 많이 변형됐지만 아직까지 모두 건강하게 잘 살아 있어 반갑기만 하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배움에 대한 학생들의 열의가 은행나무에게 질 좋은 양분이 되고 있는 건 아닐까.

생사의 오묘한 공존

 

성균관에는 은행나무 말고도 멋진 나무가 많다. 선비를 상징하는 회화나무를 비롯해 소나무도 오래된 성균관의 운치에 걸맞게 멋지고 고풍스러운 모습이다. 특히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 앞에는 예부터 군자를 상징하던 측백나무 두 그루가 서 있어 사당에 품격을 더하고 있다. 그런데 우연일까? 동쪽에 있는 나무는 주 가지가 3개이고, 서쪽에 있는 나무는 5개다. 그래서 이 나무들을 삼강오륜목이라 부르기도 한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성균관의 나무 중에 빠뜨리기 쉬운 것이 하나 있어 끝으로 소개한다. 바로 대성전 서측 담 너머 대학당(戴學堂) 앞에 서 있는 주목(朱木)이다. 대학당은 성균관의 남자 종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그런 성격 때문인지 대성전이나 명륜당 마당의 쟁쟁하고 커다란 나무들과 달리 이곳에 있는 주목은 그저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며 자라온 듯 자그마한 모습이다. 게다가 주목 특유의 꼿꼿한 모습이 아니라 무슨 이유에서인지 부러진 모양새를 하고 있다. 그래도 꺾어진 채로 꿋꿋하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실로 놀랍다. 본래 주목이란 살아있을 때뿐만 아니라 목재의 수명도 길어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 불리는 나무가 아니던가. 그에 걸맞게 대학당 앞 주목은 살아 있는 모습과 죽은 모습이 공존하는 기이한 형태로 성균관의 한구석을 채우고 있었다.

성균관의 고즈넉한 경내를 천천히 산책했다. 다양한 빛깔의 단풍들이 바닥을 수놓고 있었다. 쪼그려 앉아 신중하게 은행잎 하나를 골랐다. 햇살 아래 비추어본 은행잎의 노란 빛깔은 더없이 투명했다. 들고 있던 작은 스케치북에 끼워 넣었다. 마치 황금조각이라도 얻은 것처럼 뿌듯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풍경에도 가을의 무게감과 깊이감이 더해진 듯싶었다. 그 깊이만큼 나의 사고(思考)도 깊어질 수 있을까. 글 읽는 소리가 사라진 성균관에서 나는 조용히 한 해의 생각들을 정리하며 묵직하고 기분 좋은 사색을 이어 나갔다.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