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추적 시스템 보급 ‘재탕’ 순직사고땐 서장 문책 ‘맹탕’9일 소방의 날 50주년
빌라 화재 현장서 어린이 구출 소방대원이 불길에 휩싸인 건물에서 어린이를 구조하고 있다. 서울 구로소방서는 9일 구로구 온수동 빌라 지하 1층 창고에서 담배꽁초 불씨가 쓰레기봉투에 옮겨붙어 일어난 화재로 350여만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건물에 고립됐던 5명은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 구로소방서 제공
9일 만난 인천서부소방서 연희119안전센터 최석진 소방장(47)은 인터뷰 도중에도 연신 기침을 했다. 그는 8월 인천 서구의 페인트원료창고 화재 현장에 투입됐다가 부상을 당했다. 화재 진압 도중 안전지대로 대피할 시간이 없어 현장에서 공기호흡기 통을 교환하다가 1분이 넘도록 유독가스에 노출된 것. 그는 인천시 소방안전본부 지정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지만 전문의를 만날 수는 없었다. 중앙소방전문치료센터가 있는 경찰병원에 전화를 해봐도 한 달 이상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포기했다. 이곳저곳 병원을 다니며 쓴 치료비 40만 원도 아직 받지 못했다. 최 소방장은 “치료비도 받지 못한 내 모습을 처연하게 바라본 아내의 눈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씁쓸해했다.
9일은 50회째를 맞은 소방의 날이다. 하지만 선진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소방관들은 오늘도 열악한 처우와 근무 여건 속에 신음하고 있다.
방재청은 이날 재해 현장에 투입된 모든 소방대원의 위치와 생체 정보까지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인 ‘대원 위치추적 시스템’을 개발해 보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안전수칙도 강화해 2인 1조 활동이나 개인 안전장비 착용 같은 현행 규정을 위반한 소방관은 인사상 불이익을 주고, 안전관리 소홀로 순직 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소방관서장을 엄중 문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선 소방관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14년째 현장에서 뛰고 있는 A 소방관(43)은 “생명과 직결된 개인장비는 착용하지 말라고 해도 현장에서 착용하고 있는데 무슨 대책이 그러냐”며 “순직자 발생 시 서장을 징계한다는 것은 소극적 현장 대처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아 국민의 생명과 재산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발표된 대책 중 대부분은 이미 이전부터 진행돼 오던 사업이다.
○ 한 해 300명 다쳐도 전문병원 없어
매년 평균 7명의 소방관이 현장에서 순직하고, 330여 명이 다친다. 공상자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를 포함하면 훨씬 많은 수의 소방관이 현장에서 부상을 당한다. 하지만 이들을 제대로 보살펴 줄 전문병원조차 없다.
업무상 순직해도 현충원에 안장되기 어렵다. 업무 중 순직을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경찰이나 군인과 달리 소방관은 화재진압이나 인명구조, 구급업무 현장에서 순직해야만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35명의 소방관이 순직했지만 이 중 25명만 현충원에 안장됐다. 안장이 거부된 10명은 업무 중 심근경색으로 사망하거나 고양이를 구조하다가 추락사한 소방관 등이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인천=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