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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 달콤쌉싸름한 철학]템플스테이

입력 | 2012-11-10 03:00:00


비움이 이 시대의 화두지요. 그런데 비우라 한다고 비워지나요. 비움을 강조하다보면 비움에 대한 강박증만 앓게 되기 쉽습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는 고백은 비우게 만든 삶의 신비에 대한 얘기이지 값싼 도덕적 충고는 아닐 겁니다. 그나저나 그 신비한 비움을 템플스테이가 도와줄까요.

템플스테이가 벌써 10주년이 됐네요. 작년에는 20만 명이 템플스테이를 했다고 합니다. 템플스테이를 주관하는 조계종 문화사업단장 법진 스님은 종교로서가 아니라 문화운동으로서 템플스테이를 말합니다. 무슨 문화운동이지요? 주변을 채우느라 진작 삼켜야 했던 것, 그래서 체증으로 남아있는 것, 그 체증 속에 들어있는 생명의 불씨를 돌보는 운동이랍니다.

실제로 템플스테이를 해보셨습니까. 사실 3박 4일, 길어야 6박 7일에 무슨 큰 변화가 일어나겠습니까. 그 짧은 시간에 천년의 전통이 품고 있는 진리의 세계에 잠길 수는 없겠습니다. 그러나 인연만 맞는다면 변화의 불씨 하나는 얻어올 수 있습니다.

템플스테이를 쉼의 시간이라고들 하는데, 해보십시오. 결코 한가하지도 않고 녹록지도 않습니다. 새벽 3시부터 밤 9시까지 빡빡하기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쉼이라 느낀다면 이유는 있습니다. 바로 집중하게 되는 대상 때문입니다. 거기서 가장 집중하게 되는 대상은 부처도 아니고, 스님도 아니고, 자연도 아닙니다. 그 대상은 바로 ‘나’입니다. 나의 몸과 나의 감정, 나의 기억, 나의 행태 같은 것들입니다. 과거가 몽땅 전생이라면, 내 몸속에 자리 잡은 전생의 흔적들을 돌아보는 거지요.

그전에 나는 아파야만 쉬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을 자부심으로 삼고 살았지요. 니체에 따르면 나는 낙타였습니다. 낙타는 열심히 짐을 지고 가는데 그 짐은 주인의 것이지요. 오로지 주인의 짐을 지고 주인이 정한 길을 가는 낙타의 시간, 누구나 그 시기를 거치며 사회적 존재가 됩니다.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잡고 성과를 내는 일로 떳떳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거지요. 그런데 그렇게 공동체의 일원으로만 살다 보면 남의 평가만 내면화하는 하인으로, 하녀로, 낙타로만 살게 되는 겁니다.

낙타로 살았던 사람의 잦은 몸살은 병이기 이전에 쉼이며, 쉼이기 이전에 죄입니다. 삶을 유기한 죄, 열심히 산다는 핑계로 나를 잊은 죄, 나를 돌보지 않은 죄! 니체는 낙타가 사자로 변하는 순간을 포착합니다. 낙타로만, 하인으로만 살아왔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내 안의 사자가 깨어나는 거지요. 자기혁명의 불씨가 살아나는 순간입니다.

자기혁명의 불씨는 작은 일에서 일어납니다. 밥 먹는 일, 혼자 노는 일 같은. 템플스테이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밥 먹는 시간이었습니다. 먹을 만큼만 담기, 침묵 속에서 오로지 씹는 감각만 관찰하기! 밥과 멀건 국, 김치와 나물 두어 가지, 생각해보면 초라한 밥상이었으나 한 번도 초라하게 느낀 적이 없었던 것은 그것이 바로 공양(供養)이었기 때문인가 봅니다.

처음엔 밥 먹는 일을 모셔 올리는 공양이라 하는 데 놀랐으나, 놀라고 나니 실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밥을 먹는 일은 내 영혼을 공양하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동안 나는 밥을 먹고 있을 때조차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칼로리를 먹고, 정보를 먹고, 사교를 먹었습니다. 밥과 나 사이에 너무 많은 것이 가로막고 있어, 공양을 받아 공양을 함으로써 일상을 공양하는 마음을 잃었던 것입니다.

밥을 받는 태도가 바뀌니 생활이 바뀌네요. 밥 한 공기에 김치뿐이더라도 소중히 받게 됩니다. 그래서 과거를 돌아보면 미래가 바뀐다 하는 모양입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