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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한진重 복직 근로자 휴직, 정치논리 허구 드러냈다

입력 | 2012-11-12 03:00:00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의 정리해고자 92명이 극심한 노사분규가 타결된 지 1년 만에 일터로 돌아왔다. 하지만 일감이 없어 작업복도 입어보지 못한 채 곧바로 유급(有給)휴직에 들어가야 할 형편이다. 정치권과 노동단체들이 한진중(重) 경영진을 압박해 해고자의 재취업을 얻어내긴 했지만 경쟁력이 떨어진 조선소의 고용 환경까지 바꾸어 놓을 수는 없었다.

한진중 영도조선소는 조선업 불황, 필리핀 수비크 조선소로의 생산기지 이전, 장기파업의 후유증으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회사는 2008년 9월 이후 상선을 한 척도 수주하지 못했다. 일감은 현재 건조 중인 군함 1척이 전부다. 수주물량이 없어 빈 독을 건설회사에 빌려줄 정도라 직원 700여 명 중 500여 명은 출근 대신 유급휴직을 하고 있다. 92명의 재취업자도 유급휴직 대열에 합류해 조선소 정상화를 기다려야 할 처지다. 극한투쟁으로 허비했던 시간에 노사(勞使)가 똘똘 뭉쳐 생산성을 높이고 허리띠를 졸라매 위기 극복에 나섰더라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진중 사태는 2010년 12월 사측이 영도조선소 생산직 직원 400명의 희망퇴직 계획을 통보하면서 불거졌다. 400명 중 94명이 희망퇴직에 응하지 않았고, 노조는 총파업을 벌이며 맞섰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은 35m 크레인에 올라가 309일간 고공 농성을 벌이며 한진중 분규를 정치투쟁의 장(場)으로 몰고 갔다. 야당과 좌파 시민단체들은 김 씨를 지원한다며 이른바 ‘희망버스’를 조직해 회사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조남호 한진중 회장을 청문회장으로 불러내 “정리해고자 복직 권고안을 수용하라”고 압박해 결국 항복을 받아냈다.

한진중 사태는 자율 합의의 원칙과 기업 현실을 외면해서는 노사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기업이 경영위기 속에서 인력 감축 같은 선제적 대응을 하지 못하면 벼랑 끝에 내몰려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노조가 극한투쟁으로 맞서고,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개입하면 사태는 꼬이고 일감은 더 줄어들게 된다. 정치권이 기업인의 팔을 비틀어 정리해고자를 현장으로 밀어 넣더라도 기업 자체가 경쟁력을 잃어버리면 소용없는 일이다.

정치권과 대선후보들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문제도 한진중 사태처럼 정치적 결단으로 풀겠다고 벼르고 있다. 노사 간 신뢰와 타협의 토대 위에서 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일터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근본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