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毛澤東) 없는 중국은 상상하기 어렵다. 베이징 톈안먼(天安門)에는 높이 6m, 폭 4.6m의 거대한 그의 초상화가 걸려 있어 중국을 상징한다. 톈안먼 광장에는 그의 시신이 안치된 마오쩌둥 기념관이 있다. 그의 친필 ‘인민영웅이여 영생불멸하라’를 새긴 거대한 기념비도 우뚝 서 있다. 2위안짜리를 뺀 중국의 모든 지폐에는 마오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1976년 9월 마오가 숨진 지 36년이 흘렀지만 마오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 문제로 베이징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가 벌어진 9월과 10월 많은 마오의 초상화가 등장했다. 마오는 봉건주의의 압제와 제국주의의 침략에서 중국인을 해방시켜 오늘의 중국을 있게 했다.
얼마 전 반(反)중 웹사이트를 인용해 공산당이 마오 사상을 당의 지도이념에서 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설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마오 사상이 시대 조류와 맞지 않고 자칫 그의 치명적 패착인 문화대혁명 같은 정치적 혼란을 다시 불러올 수 있다는 근거가 곁들여졌다. 마오 시대를 연상시키듯 대대적인 홍색(紅色) 문화운동을 벌이던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 시 서기가 실각한 것도 이런 설의 근거로 사용됐다. 심지어 제18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마오 사상이 당장(黨章)에서 삭제될 가능성까지 보도됐다.
중국 최대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의 왕웨이광(王偉光) 상무부원장은 이날 당대회 미디어센터 주최 내외신 합동 인터뷰에서 “공산당은 91년 역사상 두 개의 위대한 이론을 창조했는데 첫 번째가 마오 사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다른 하나는 중국특색사회주의”라며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뿌리로 한 마오 사상과 중국특색사회주의는 서로 일맥상통하며 함께 가는 관계”라고 덧붙였다.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서방의 한 중국 전문가는 공산당의 중국 통치는 마오와 경제성장이라는 2개의 기둥에 의해 유지된다고 진단한 바 있다.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인 덩샤오핑(鄧小平)도 “마오 동지의 공은 7, 과는 3”이라고 했다. 중국 공산당과 마오는 이처럼 불가분의 관계인 셈이다.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