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중수사 갈수록 태산… 참고인 소환경쟁땐 인권침해 우려
경찰이 서울고검 김모 검사(51·부장검사급)의 수뢰 의혹 사건을 수사하자 뒤늦게 별도 수사에 나선 검찰이 경찰보다 한발 먼저 주요 피의자를 소환하는 방식으로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다. 김수창 특임검사팀은 경찰이 16일 출석을 요구한 김 검사를 사흘 앞선 13일 소환조사하기로 했다. 김 검사에게 6억 원을 준 유진그룹 유경선 회장과 유순태 사장도 경찰이 13일 불러 조사할 계획이었지만 검찰이 하루 먼저 소환조사했다. 수사 속도 경쟁에 나선 검경이 피의자 소환 시기를 두고 또다시 충돌을 시작한 것이다.
○ “검찰이 ‘경찰 조사 나갈 필요 없다’더라”
경찰은 당초 김 검사가 출석 요구에 계속 응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강제구인까지 불사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검찰이 선수를 치는 바람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처지가 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12일 “김 검사 소환 일정을 뻔히 알면서 며칠 먼저 불러 조사하겠다는 건 경찰 수사를 방해해 사건을 완전히 빼앗아 가겠다는 의도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경찰 역시 핵심 정보를 가진 주요 참고인을 먼저 부르기 위해 검찰과 신경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검경이 수사 성과를 의식해 사건 관계인을 따로 조사한 뒤 타 기관에는 비협조를 권유하는 행태도 나타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당초 경찰에 출석하기로 한 주요 참고인을 검찰이 아침에 데려가 조사하고는 ‘경찰에는 나갈 필요 없다’고 했다더라”라고 말했다. 수사는 뒷전이고 검경 갈등만 보이는 대목이다.
향후 수사 과정에도 이 같은 갈등 요소가 산재해 있다. 우선 경찰의 협조 요청을 검찰이 묵살할 개연성이 크다. 김 검사가 받은 돈이 직무와 관련이 있는지를 확인하려면 검찰 내부 정보가 필요한데 이미 자체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검찰이 순순히 확인에 응할지 불투명하다.
경찰은 12일 서울중앙지검에 유진그룹을 내사했는지, 어떤 내용이었는지 사실 조회 및 자료 요청에 나섰다. 하지만 검찰이 “특임에서 이미 확인한 내용이라 공개가 불필요하다”고 버티면 별 도리가 없다. 압수수색이나 체포영장도 “구체적 혐의도 수사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영장을 신청했다”는 이유로 검찰이 기각시켜도 역시 경찰엔 뾰족한 수가 없다.
검찰이 사건을 검찰에 넘기라며 송치지휘를 내릴 가능성도 있지만 경찰은 사건 관계인의 이의제기가 없었고 검찰이 뒤늦게 수사에 나서면서 이중수사가 된 만큼 송치지휘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경찰은 송치지휘가 내려올 경우 사건을 뺏기지 않으려고 계속 재지휘를 건의하며 ‘시간 끌기 작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 “돈 준 사람 상당수 대가성 인정”
김 검사와 함께 마카오로 여행 가면서 수백만 원의 경비를 제공한 KTF 임원 역시 경찰 조사에서 “김 검사가 수사 편의 제공을 약속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유진그룹과 조희팔 측근을 제외하고 돈을 보낸 개인 및 회사 관계자 3, 4명은 대부분 김 검사로부터 수사받은 사실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2008년 중순 김 검사가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일 당시 검찰이 유진기업을 내사한 정황이 있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그 시점에 유진그룹 측이 김 검사에게 6억 원을 줬기 때문에 그 돈이 내사 무마용일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다른 검사가 수사하던 사건에 김 검사가 부당하게 개입한 의혹도 제기됐다. 경찰에 따르면 김 검사는 2, 3년 전 대구지검 서부지청 차장으로 근무할 때 이 같은 혐의로 사건 당사자에게서 고소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고소 내용의 진위를 조사 중이다.
특임검사팀도 대가성 입증에 초점을 맞추고 전날 김 검사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를 분석하고 있다. 특히 검찰은 2008년 김 검사가 KTF 측으로부터 마카오 여행 경비와 도박자금을 제공받은 것은 대가성이 있다고 본다. 옆 부서에서 진행하던 수사에 대해 “수사 편의를 제공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았다면 알선수재 혐의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유진그룹 측에서 받은 6억 원에 대해서도 뇌물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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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