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朴-文-安, 필요한 돈 얼마인지조차 아직 물음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11일 동시에 공약집을 발표함에 따라 주요 대선후보의 복지, 경제정책의 전체적 윤곽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 공약들을 실현하기 위해 얼마가 필요한지 보여주는 재정추계(推計) 부분은 여전히 ‘빈 칸’으로 남아 있다. 후보들은 이 부분에 대해 “조금 더 기다려주면 좋겠다” “단일화 과정이 남아 있어 아직 밝히기 어렵다”며 말끝을 흐리고 있다.
공약을 현실화하는 데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 명확히 밝히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돈을 조달할 방법에 대해서는 더 ‘뜬 구름 잡기 식’ 설명만 있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태가 선거 직전까지 계속된다면 유권자들은 각 후보의 ‘진짜 실현가능한 공약’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 채 투표장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 자기 공약 재정추계도 못 해
총선이 끝나고 대선후보 경선을 거쳐 각 후보가 공약집을 새로 내놨지만 이 수치는 8개월 동안 전혀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안 후보 역시 저서 ‘안철수의 생각’에서 기초적인 ‘보편적 증세’ 의견을 밝힌 것 외에 별다른 재정추계나 재원마련 대책을 공개하지 않았다.
재정 전문가들은 대선주자들이 치열한 복지 경쟁과 ‘상대 공약 베끼기’에 나서면서 필요한 ‘돈의 단위’가 총선 때보다 훨씬 더 커졌을 것으로 추산한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총선 때까지만 해도 부정적이었던 반값등록금 공약을 뒤늦게 들고 나온 것, 문 후보가 최근 ‘의료비 100만 원 상한제’ 공약을 새로 꺼내든 것 등이 그 사례다. 이런 점 때문에 한국경제연구원은 8월에 낸 보고서에서 “복지공약 소요 비용은 새누리당이 5년간 270조 원, 민주당이 571조 원으로 각 당이 발표한 것보다 훨씬 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후보들의 개별 공약에 대한 정부나 전문가들의 분석을 보면 연간 수조 원이 더 필요한 공약이 부지기수다. 세 후보가 모두 약속한 ‘0∼5세 무상보육’은 연간 약 7조 원, ‘기초노령연금 인상’은 3조∼4조 원의 정부예산이 추가로 필요하다. ‘반값등록금’은 후보별 세부 공약에 따라 2조∼5조 원, ‘고교무상교육’은 연 2조 원의 국가재정이 더 들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각 당의 무상의료 공약은 정확한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추계가 어렵지만 보험료가 올라가든, 국고지원액이 늘어나든 비용이 수반되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문 후보의 의료비 상한제는 연간 10조 원이 더 들 것이라는 계산이 건강보험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필요한 전체 복지재원은 문 후보가 가장 많고 안 후보는 문 후보와 박 후보의 중간 정도 되는 것 같다”면서 “지금은 ‘어떤 지출을 줄여 어떤 부분은 꼭 하겠다’는 식의 진솔한 호소가 필요한 시점인데 세 후보 모두 그런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재원 마련 대책도 빈약할 수밖에 없다. 일부 후보 캠프 관계자들이 부분적으로 증세(增稅)를 언급했지만 수백조 원의 공약이행 비용을 뒷받침하기에는 여전히 태부족이다. 누가 집권하더라도 재정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다.
박 후보는 불필요한 정부 지출을 줄여 60%를 충당하고 40%는 비과세·감면 축소,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문 후보와 안 후보 측도 조세감면의 정비를 통한 재원 마련을 언급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를 통해 실제 얻을 수 있는 추가 재원은 극히 미미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올해 조세지출액(세금감면액) 27조7000억 원 중 대기업에 가는 혜택은 4조6000억 원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근로자, 농어민,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에게 돌아간다. 재정부 당국자는 “말로는 다들 비과세·감면 정비를 약속하지만 실제로 뜯어보기 시작하면 손댈 만한 게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세 논의 역시 실제 세수(稅收)를 대폭 늘릴 만한 대책으로 마땅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민주당이 당론으로 소득·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을 공약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늘어날 재원은 자체 추산으로도 최대 연 5조 원에 불과하다. 안 후보가 최근 내놓은 ‘간이과세 확대’ 공약은 세원(稅源)의 투명성을 약화시켜 오히려 세수를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본인이 약속한 ‘보편적 증세’와도 상반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