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현 문화부 차장
해오름극장 2층 로비 서쪽에는 진작부터 3개의 흉상이 서 있었다. 초대 국립극장장 유치진(1905∼1974)과 이해랑(1916∼1989) 이진순(1916∼1984)이다. 모두 연극계 인사다. 임성남 송범 두 분의 흉상이 들어서 연극계와 무용계의 균형을 맞추게 된 것이다.
무용계로선 경축할 일이지만 그 이면엔 미묘한 경쟁심이 숨어 있다. 1962년 국립무용단이 창단될 당시에는 서양무용인 발레와 한국무용이 함께 동거하다가 1973년 국립발레단이 분리되면서 국립무용단은 송범 단장이 수장을 맡았다. 두 사람은 ‘한 지붕 두 가족’ 시절까지 포함해 똑같이 30년간 국립발레단과 국립무용단을 이끌었다. 그래서인지 흉상 제작도 각각 국립발레단과 국립무용단이 중심이 돼서 이뤄졌다.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서양 춤인 발레는 돈과 사람을 끌어모으고 있지만 우리 춤인 한국무용은 명맥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다. 발레는 서울에서 한번 공연하면 일주일 가까이 공연하면서 객석을 꽉꽉 채우지만 한국무용은 이틀밖에 공연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예산 격차도 크다. 국립발레단의 예산은 한 해 100억 원(국고보조 70억 원) 안팎을 넘나드는 반면 국립무용단의 예산은 그 절반도 안 되는 40여억 원에 불과하다. 국립무용단의 경우 인건비를 빼고 순제작비만 따지면 5억여 원밖에 안 된다.
이 때문에 한국무용계에선 정부 지원이 더 늘어야 한다고 볼멘소리를 내기 일쑤다. 하지만 그 전에 자생력을 갖추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1999년 재단법인이 돼 국립극장으로부터 독립한 국립발레단은 최근 국립무용단의 1년 예산에 가까운 공연 수입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38억 원의 공연 수입을 올려 이 중 8억여 원의 흑자를 냈다.
한국무용이 정체를 면치 못하는 원인 중 하나는 인간문화재(무형문화재) 제도에 너무 안주한 탓도 크다. 국립무용단이 출범한 1962년 시작된 인간문화재 제도는 우리 전통 춤의 보전과 발전에 기여한 ‘항생제’의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예술적 면역력을 약화시키는 ‘독’이 되고 있다.
옛 춤의 원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살아 있는 ‘새 춤’이 되기 위해선 옛 춤의 틀을 깰 수 있는 ‘젊은 피’의 수혈이 더 중요하다. 한국발레가 양산한 김용걸 김지영 김주원 이동훈 서희 김기민과 같은 젊은 스타들에 견줄 만한 한국무용의 ‘젊은 피’로 누구를 떠올릴 수 있을까. 한국무용도 한때 최승희 조택원이라는 걸출한 젊은 스타를 보유했을 때 전성기를 누렸다는 점을 잊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