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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만에 사건 뺏긴 경찰

입력 | 2012-11-14 03:00:00

이중수사 논란 靑-총리 경고뒤 “檢과 안겹치게”
수사지휘 맞대응 카드 없어 ‘검찰의 벽’ 절감




돈 받은 김광준 검사 특임팀 출석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가 특임검사팀이 꾸려진 서울 서부지검에 13일 출석했다. 그는 취재진의 질문에 입을 다물고 포토라인에서 허공을 2분가량 응시하다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경찰이 사실상 백기(白旗)를 들었다. 경찰의 서울고검 김광준 검사(51) 비리 수사에 끼어든 검찰이 특임검사팀을 출범시켜 ‘검경 이중 수사 논란’이 벌어진 지 사흘 만이다. 경찰은 “사건 가로채기”라고 검찰을 비판하며 독자적 수사 방침을 세웠으나 ‘검사 연루 사건은 우리만 수사한다’는 검찰의 오랜 고집을 꺾지 못한 것이다.

경찰청은 13일 오후 “김 검사에 대한 수사는 계속하되 검찰과 같은 내용의 ‘교집합’은 빼고 검찰이 하지 않는 ‘여집합’을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핵심은 빼고 부스러기만 수사하게 될 공산이 크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 조사를 받은 사람을 또 불러내면 인권 침해 논란이 일 수 있고 검찰에 구속이나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해도 받아들여지겠느냐”며 “김 검사의 새로운 비리 혐의는 계속 파헤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김기용 경찰청장은 1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계속 수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로부터 불과 몇 시간 뒤 경찰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이중수사 논란의 주된 책임이 검찰에 있으므로 독자수사를 강력히 밀고 나가겠다던 경찰이 이렇게 타협적 태도로 돌아선 것은 검경 갈등을 신속히 봉합해야 한다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방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이날 권재진 법무부 장관과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경찰의 수사개시권과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규정한 형사소송법에 근거해 신속하고 엄정하게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게다가 경찰은 사실상 수사의 돌파구가 막힌 상태다. 경찰이 16일 소환조사받으라고 요구한 김 검사는 이날 특임검사팀이 꾸려진 서울 서부지검에 출석했다. 김 검사에게 6억 원을 준 유진그룹 EM미디어 유순태 사장은 13일 경찰에 출석하기로 해놓고 하루 먼저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뒤 경찰 출석을 거부했다. 돈의 대가성 여부를 밝혀 줄 다른 주요 참고인 역시 경찰 소환에 줄줄이 불응할 개연성이 높다.

어차피 김 검사 사건에 대한 ‘독자적 수사’를 관철할 동력이 없다.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는 처지라 검찰에 맞설 ‘무기’가 없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를 건드리지 않는 범위에서만 수사하겠다는 건 경찰의 어쩔 수 없는 ‘출구전략’으로 보인다. 경찰은 김 검사의 차명계좌와 대가성을 보여 주는 진술을 확보해 “이번만큼은 우리 손으로 검사 비리를 밝히겠다”라고 나섰지만 ‘검찰의 벽’과 자신의 한계를 재확인했을 뿐이다. 하지만 맥없이 물러선 경찰 수뇌부에 대한 일선 경찰들의 분노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돼 논란은 제2막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