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주필
갈 데까지 가보겠다는 모험주의
10년 전 노무현 후보는 “아이, 낳기만 하십시오. 노무현이 키워 드리겠습니다”라고 진정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그렇게까지 공약하니, 엄마아빠 할머니할아버지 될 사람들은 믿고 싶었고 매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개뿔도 없었다.
늘어나는 것은 복지 시혜를 기다리는 줄이요, 세금 쓰는 공무원 숫자다. 그런 세상을 만들겠다고 대선후보들이 공언하고 다닌다. 정부 비대화야말로 반(反)경제민주화다. 경제침몰 지옥도를 보여주는 유럽의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이 걸었던 바로 그 길이다. 3년 전 일본 민주당이 민심을 훔쳤던 바로 그 수법이다. 며칠 전 일본 노다 총리는 “공약들을 철회할 수밖에 없다”며 국민 앞에 사죄했다. 프랑스 친(親)노조 좌파 올랑드 정권은 복지 확대의 깃발을 흔들어 집권한 지 7개월 만에 투자와 고용 촉진,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0억 유로(약 28조 원)의 기업 감세(減稅)를 발표했다.
‘실패의 선생’들이 눈앞에 수두룩한데도 우리 후보들은 ‘갈 데까지 가보겠다’고 뻗치고 나온다. 싸이는 그래도 된다. 하지만 내년 2월 취임하는 18대 대통령이 ‘세계가 실패한 길’로 갈 데까지 가보겠다고 덤비면 대통령 한 사람의 운명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갈 데까지 가버리는’ 수가 있다.
경제가 불안하고 민생은 고달프다. 일자리는 구하기도 지키기도 어렵다. 이럴 때 정치가 먼저 할 일은 기업 투자를 북돋고 시장을 활성화 안정화시키는 일이다. 대선후보라면 글로벌 장기 침체의 위기를 관리 극복 돌파할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 정치는 화풀이 민심을 부추기는 데 여념이 없다. 안철수 후보는 안철수연구소를 세계적 경쟁력이 있는 대기업으로 키우지는 못했지만 ‘대기업 때리기’로 정치적 지지율을 높이는 데는 꽤 성공했다. 박근혜 후보가 재벌 순환출자의 소급 금지에 반대하자 문재인 후보는 ‘1%의 대변자 박근혜, 99%의 대변자 문재인’이라고 치고 나왔다. 1%를 때려 99%에게 나눠주겠다며 편 가르기, 강남 때리기를 즐긴 노 전 대통령을 닮았다. 당시의 결과는 아파트값 폭등, 부동산 자산 양극화, 빈익빈 부익부의 고착화였다.
화풀이 표적을 세워놓고 함께 때리면 ‘표를 모으는 힐링’이 될 수는 있지만 그런다고 경제위기가 해결되고 민생에 윤기가 돌지는 않는다. 경제는 더 망가지고 민생은 더 피폐해질 것이다.
삼성그룹의 국내 일자리는 2002년 말 12만 명에서 올해 초 21만 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해외 일자리는 6만 명에서 16만 명으로 더 많이 늘었다. 4년 전 설립된 삼성전자 베트남 휴대전화 공장에는 2만4000명의 베트남 근로자들이 ‘최고양질의 일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 공장의 수출규모는 베트남 전체 기업 중 2위다.
재벌에게 기존의 순환출자까지 다 토해내라고 하면 신규사업 투자에 매진하기보다는 이 문제에 매달려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정치인도 자본가도 도덕군자가 아닌 속인(俗人)이다. 정치인은 애국애족을 말하지만 당선과 권력에 더 집착한다. 자본가는 돈과 이익을 좇고, 그 결과로 일자리를 만들고 많은 세금을 냄으로써 사회에 기여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간판기업들이 ‘정치적 과잉 경제민주화’의 주술에 발 묶여 휘청거리면 애플과 도요타는 웃고, 국내 협력기업들과 그 근로자들은 더 허기질 것이다. 그 파장은 더 넓게 퍼질 수밖에 없다.
삼성 현대를 때려 중소중견기업들을 쑥쑥 키울 수 있다면 한번 해볼 일이다. 그러나 몇 안 되는 글로벌 기업을 더욱더 해외로 눈 돌리게 한다면 안철수연구소가 투자와 일자리와 국부를 대신 창출할 수 있겠는가. 5000만의 경제를 섣부른 실험의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 뿔 고치겠다고 소를 죽여선 안 된다.
배인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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