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사회부 차장
이 대통령 부부는 늘 아들이 걱정이었다. 큰사위는 재벌회사 변호사, 둘째 사위는 서울대병원 의사, 셋째 사위는 재벌 3세인데 아들은 크게 내세울 게 없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한 여성단체 신년하례회에서 ‘우리 집도 딸들이 낫다’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대선 약속을 지키느라 331억 원 상당의 빌딩 세 채를 기부하는 바람에 시형 씨는 물려받을 재산도 거의 없다. 시절 좋을 때 출가한 누나들과 달리 좋은 혼처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대통령 부부에게서 “시형이 중매 좀 서라”는 말을 들었다는 지인도 적지 않다.
지난해 5월 24일 시형 씨에게 현금을 직접 건넸다는 큰어머니 박청자 씨는 압수수색 나온 특검팀 수사관에게 “내가 돈을 줬다고 하던가요. 누가 그러던가요”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50kg이나 되는 현금 다발을 건넸다면 그렇게 말할 리 없다. 박 씨 집 경비원은 인터뷰에서 “검찰이 주차기록과 카메라기록을 다 가져갔는데 그날 그 사람(시형 씨)은 오지 않았다”고 했다. 차용증도 문제였다. 특검이 실제 작성 날짜를 확인하기 위해 원본 파일 제출을 요구하자 청와대는 “삭제됐다”고 했다. 압수수색도 거부했다. 이쯤 되면 “큰어머니에게 돈을 받아왔다”는 시형 씨 말을 믿어줄 사람은 몇 안 돼 보인다. 특검 주변에서 “이 대통령 돈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나온 건 그래서다.
검찰과 특검에서 이리저리 진술을 바꿔야 했던 시형 씨의 마음고생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시키는 대로 한 아들이 수많은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이 대통령 부부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아들의 장래를 위해 아들 명의로 땅을 매입했다’고 한 김윤옥 여사의 서면진술엔 이런 고민의 흔적이 담겨 있다. 김 여사는 ‘아들이 빚을 못 갚으면 담보로 제공한 논현동 땅을 팔아 갚으려고 했다’고 해 증여 의도를 사실상 시인했다. 형사처벌 위기에 놓인 아들을 구하고 편법증여의 비난은 자신이 감수하겠다는 의미였다.
누구나 자식 앞에선 마음이 약해진다. 잘 풀리지 않는 자식이라면 더 그렇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래선 안 된다. 자식을 위해 편법을 쓰는 대통령을 이해할 국민은 없다. 애틋한 부모의 정이 결국 아들을 욕보이고 국가원수의 체면만 구겼다. 딱한 일이다.
박정훈 사회부 차장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