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영국 시인 존 던은 ‘영혼을 교감시키는 것은 키스보다 편지’라고 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백두사업’ 추진과정에서 이양호 국방부 장관이 로비스트 린다 김에게 보낸 연서(戀書)가 시중의 화제가 됐다. “샌타바버라 바닷가에서 아침을 함께한 추억을 음미하며…”라고 쓴 남자의 애틋한 고백은 읽는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노무현 정부 때 신정아 스캔들에도 당시 실력자였던 변양균 대통령정책실장이 등장했다. 신-변 커플은 100통이 넘는 사랑편지를 주고받았다. 린다 김은 “신정아와 비교되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는 말을 남겼다.
▷퍼트레이어스 스캔들은 사생활의 보호범위에 대한 해묵은 논쟁을 촉발했다. 미국 법원의 판례는 공인(公人)의 사생활 공개가 허위가 아닌 경우나, 설령 허위라도 진실로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알권리를 우선시한다. 퍼트레이어스는 FBI가 수사 중에 관련자의 e메일을 열람하다 잡힌 뜻밖의 대어(大魚)다. “뼛속까지 무장(武將)인 체하더니…”라는 조소도 나오지만 미국 정보당국 수장(首長)의 내밀한 부분이 낱낱이 공개되는 것을 목격한 보통 남자들은 은근히 ‘디지털 빅 브러더’의 존재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