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의 변명/베터니 휴즈 지음·강경이 옮김/620쪽·2만8000원·옥당
민주주의 이전의 민주주의를 살고, 철학이 탄생하기 전 철학을 했던 철학자들이 있던 아테네. 소크라테스가 당대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매력적인 것은 올바른 삶을 위해 스스로의 내면과 영혼에 대해 끊임없이 돌보라고 충고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DB
예정대로 독배를 들이킨 소크라테스. 살인이 아니라 국가가 지원한 자살이었지만, 말초신경계를 공격해 점점 몸이 굳게 되는 ‘독당근즙’은 그가 편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아테네인들이 베푼 마지막 배려였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년). 동아일보 DB
돌이켜보건대 나의 죄목은 무엇이었던가? 불경죄. 아테네 신을 숭배하지 않고 젊은이들을 신에게서 등 돌리게 함으로써 타락시켰다는 건데, 진짜 문제는 내가 시끄럽고 허름한 구두장이 공방에서 관습을 벗어난 새로운 생각의 씨앗을 틔웠다는 거였지. “자신과 화해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는 존재는 ‘그들’이 아닌 우리 자신이다.” 하지만 아테네인들에게 젊은이는 신성한 존재이자 절대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될 불가침의 존재였음을 내가 간과했던 건지 모르겠군. 이 도시가 사랑하고 소중히 아끼는 그들이 더 많은 걸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 그들과 어울렸던 것이거늘.
그래서 알려주겠네. 아테네는 자유와 민주주의, 문명이 완벽히 갖춰진 도시는 아니었어. 외면의 아름다움이 내면의 고귀한 영혼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믿는 이들이 가득한 이 도시에서 나는 추하고 너저분한 남자였네. 시민들이 말하는 자유는 페르시아의 ‘개 같은 야만인’에게 억압당하지 않을 자유와 그들의 노예가 되지 않을 자유였고,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는 아고라에선 1년에 단 하루를 빼고 매일 크고 작은 종교축전이 열렸지. 사람들은 불에 그슬린 염소 털과 비둘기 피를 바쳤고, 아픈 사람의 팔다리와 무릎, 성기를 본뜬 모형도 바쳤다네.
소송을 즐기는 아테네인들에게 법정은 한 편의 연극 같았지. 합의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상대를 이기기 위한 곳이었으니. 남자들이 울고 애걸했고 귀족들이 민중의 발아래 엎드리기도 했지. 원고와 피고의 눈물, 간절한 손동작, 멋진 언변,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최후의 판결까지…. 법정이라는 극장에서 일어나는 교묘한 감정 조작은 수많은 배심원, 아니 관객들에게 중요한 흥행 요소나 다름없었다네. 전쟁이 끝난 후 남성의 3분의 1은 목숨을 잃었고 내전 시기에는 파벌 정치로 일가족이 몰살당하며 울부짖던 아테네는 카타르시스를 간절히 원했고 책임을 물을 대상이 필요했지. 그게 오늘의 나라는 점이 안타깝지만.
사랑했지만 날 버린 애증의 도시 아테네에서 나는 너무 이른 꿈을 꾼 것 같네. 이 도시가 나를 받아들이기엔 아직 준비가 덜 돼 있지 않나 싶어. 새로운 미래를 가꾸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거나, 누군가는 앞서서 몰매를 맞아야 하는 법. 자, 이제는 자네가 선택할 시간. 나를 죽일 배부른 돼지가 되겠는가, 나를 따라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후예가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