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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학생들 “집단 따돌림만 문제? 사이버 왕따도 힘들어요”

입력 | 2012-11-17 03:00:00

[학교폭력 끝날 때까지] 학교폭력 2차 실태조사서 드러난 온라인 괴롭힘 실태




“학교폭력 이제 그만!” 대구 학남초 학생들은 교실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에 대한 해결책을 토론한 뒤 학교폭력 예방 서약서를 쓰고 선서한다. 지킬 수 있고 즉각적인 효과가 있는 대책을 만들어 학교폭력을 줄이려는 학교의 노력이다. 대구 학남초 제공

‘하다 하다 안 되니까 담탱이도 파냐.’ 여중생 A 양에겐 처음이자 마지막인 댓글이었다.

A 양은 지난여름 스마트폰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카카오스토리에 가입했다. 사진을 올리거나 간단한 글을 남기면 온라인 친구들이 댓글을 단다. ‘카토리’ 또는 ‘카스’라고 한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스마트폰을 장만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

문제는 가입한 뒤였다. 사이버 공간에서 왕따를 당했다. 같은 반 아이들에게 친구신청을 했지만 대부분 거절당했다. A 양에게 친구 신청을 하는 아이들도 없었다. A 양이 멋진 사진을 올려도 댓글이 없었다. ‘화면에 친구 수가 다 드러나는데….’ 외롭고 민망할수록 더 집착했다. 담임교사와 찍은 사진을 올렸더니, 댓글이 등록됐다는 알람이 처음 울렸다. 설레는 마음에 열어봤더니 ‘담탱이(담임의 속칭)를 파냐’는 글. A 양은 더 우울해졌다.

초등학생 B 군은 네이버에서 자기 학교 이름을 검색할 때마다 실망한다. 검색 화면에 ‘○○초등학교 6학년 4반’이라는 카페가 뜬다. 회원은 14명. 반에서 소위 잘나가는 학생끼리 모인 카페다. 가입 조건은 엄격하다. 성적이 좋아야 하고, 동네에서 괜찮다고 소문난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 B 군이 용기를 내어 가입신청을 했다. 회원인 여학생이 쪽지를 보냈다. ‘찌질이는 출입금지.’

정부가 16일 발표한 학교폭력 2차 실태조사를 보면 요즘 학생들은 온라인에서의 따돌림과 괴롭힘을 두려워한다. 8가지 학교폭력 유형 가운데 사이버 괴롭힘의 발생 빈도는 7.3%로 6번째에 그쳤다.

하지만 피해를 당한 아이들이 힘들었다고 꼽은 유형(복수 응답)에서는 집단 따돌림(75.2%)에 이어 사이버 괴롭힘이 65.0%로 2위다. 교과부 관계자는 “피해 학생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심각성은 따돌림과 사이버 폭력에서 특히 두드러진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온라인에서 존재감을 확인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는 학생이 늘어난다고 지적한다. 성적이나 외모, 집안 경제력을 따지는 현실 속에서 마음을 털어놓고 지낼 친구를 찾기 힘들게 되자 나타난 현상이다.

문제는 요즘 유행하는 SNS에 온라인 친구의 수, 올린 글이나 사진의 조회 수, 댓글 수, ‘좋아요’를 누른 수 등 모든 반응이 공개된다는 점. 기대를 하면서 찾은 온라인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데 대해 강박증까지 느낀다.

스마트폰과 SNS를 쓰는 청소년이 급증하는데도 학교폭력 예방교육과 대처방식은 전통적인 학교폭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디까지가 학교폭력인지, 또 어떤 행동이 잘못인지, 사이버 폭력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아이들이 잘 모르는 이유다. 교사 역시 사이버 학교폭력을 발견하기 어려운 데다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한국청소년개발원 이창호 연구위원은 “오프라인의 학교폭력은 얼굴을 맞댄 상태에서 일어나지만 온라인의 학교폭력은 언제 어디서나 생기기 쉽고, 순식간에 퍼지는 특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응답률 1차의 3배… “피해당했다” 소폭 줄어▼

■ 실태조사 내용 및 개선책


학교폭력 2차 실태조사의 평균 응답률은 73.7%다. 3월의 1차 조사(25.0%)보다 훨씬 높다. 응답률이 10% 미만인 학교도 1차에서는 1914곳이었지만 이번에는 없었다.

피해를 봤다고 대답한 학생은 32만1000명(8.5%)이었다. 1차 조사에서는 17만1637명(12.3%)이었다. 교과부 관계자는 “응답을 하지 않은 학생 중에 피해자가 있을 수도 있으므로 실제 피해가 줄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피해 학생의 비율은 초등학생(11.1%) 중학생(10.0%) 고등학생(4.2%) 순이었다. 성별로는 남학생(10.5%)이 여학생(6.4%)보다 많았다. 유형별로 보면 욕설(33.9%)과 금품 빼앗기(16.2%)가 가장 흔하다. 피해자의 42.4%는 2가지 유형 이상의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교과부는 학교별 피해율을 11월 말 학교알리미(www.schoolinfo.go.kr)에 공개할 예정이다. 피해 정도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난 학교 1000곳 정도를 비공개 생활지도특별지원학교로 정해 관리할 계획이다. 일진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100곳 정도(전체 학교의 1%)는 내년 3월부터 비공개 ‘일진경보학교’로 분류해 외부 전문 조사단을 투입하는 등 집중적으로 지도한다.

교과부는 학교폭력 가해 사실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와 관련해서도 개선안을 내놓았다. 학생부에 올라간 가벼운 사례는 졸업 직후 지우기로 했다. 삭제되는 유형은 △서면 사과 △학교 내 봉사 △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 금지 △학급 교체다. 이 방안은 2013년 2월 졸업생부터 적용돼 현재 고교 3년생이 재수를 할 때는 학생부의 학교폭력 관련 기록이 없어진다. 그러나 사회봉사와 출석정지 같은 중징계 기록은 지금처럼 졸업 후 5년간 보존된다.

교과부는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매년 4월과 9월에 정기적으로 하고, 내년부터는 조사 대상을 학부모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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