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비핵화는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최고의 정책 목표”
1년 전 한국에 부임할 때보다 흰머리는 더 늘었지만 표정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눈을 보면 뭐든 다 답해 줄 것 같은 인상과 달리 질문 공세를 펼쳐도 민감한 주제는 잘 피해 나갔다. 타고난 외교관이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미국 대통령 선거 1주일 후인 14일 서울 중구 정동 대사관저 ‘하비브하우스’에서 김 대사와 마주 앉았다. 대사 취임일(지난해 11월 10일)부터 따지면 1년 하고 딱 나흘이 지났다. 지난 1년의 생활에 대해 묻자 지체 없이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굉장한(amazing) 시간이었다”고 답했다. 그는 “첫 1년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재미있었고, 생각보다 훨씬 더 바빴고 그 사이 양국 관계에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첫 1년을 환희(delight), 영광(honor), 긍지(pride)라는 세 단어로 요약했다.
―한국인들의 지나친 기대가 마음에 짐이 되지는 않았나.
한국계라는 점이 직무수행에 엄청난 힘
―한국계 미국 대사라는 점이 직무 수행에 도움이 되나.
“한쪽으로 치우친(biased)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힘이 됐다. 한국을 알고, 한국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 있으며, 한국인을 사랑한다는 점이 큰 도움이 됐다. 양국 관계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사안들에 대해 그동안 축적한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적절히 살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김 대사는 부임 후 1년 동안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한 덕에 한국어 실력이 크게 늘었다고 자평했다. 개인 한국어 교사와 동아일보를 읽으며 표현을 익혔다. 한국말을 알아듣는 데는 아무런 불편이 없지만 복잡한 문제를 설명할 때는 영어가 편한 것 같다.
―전임자인 크리스토퍼 힐은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캐슬린 스티븐스는 ‘공공외교’라는 브랜드로 한국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됐다. 김 대사는 어떤 대사로 기록되고 싶은가.
김 대사는 지난 1년 동안 활동이 다소 소극적이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에 정색을 하고 “외교란 밖으로 보여지는 측면도 있지만 실질(substance)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고 응수했다. 그는 “워싱턴은 주한 미국대사관이 여러 이슈에 대해 내놓은 의견과 제언을 대단히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사관의 모든 정책과 외교 활동을 다 개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 대사는 청와대의 천영우 외교안보수석, 외교통상부의 김성환 장관, 통일부의 고위 당국자들과도 ‘강건한 협력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대사는 또 “한국 당국자들과의 만남 이외에도 제임스 서먼 주한미군 사령관과 정기적으로 만나 어떤 종류의 도발에도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한미 관계는 “이보다 좋을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발전했다. 다만 다음 달 19일 한국 대통령선거 결과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한미 간에 해결해야 할 까다로운 현안이 산적해 있다.
美국방예산 줄어도 한반도 방어의지 확고
―미사일 지침이 개정됐지만 2014년 3월 만료되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이 숙제다. 평화적 원자력 이용을 위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와 농축 허용 여부가 관건인데….
―혹시 한국의 의도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나 신뢰 부족 차원이 아니라 미국이 우려하는 비확산의 문제이자 핵안전과 관련된 문제다.”
―당장 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걸려 있다.
“가장 공평한 분담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큰돈이 얽혀 있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나 자신도 참여했던 경험이 있는 과거 협상을 봐도 결국 양국 동맹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접점을 찾았다. 국방예산 삭감에도 미국의 한반도 방어 의지는 확고하다.”
10여 차례 북한을 방문해 영변 핵시설 냉각탑 폭파 현장을 직접 목격했고 북한의 핵 신고서를 직접 들고 나왔다. 그런 김 대사도 북핵문제 해결에는 자신감을 보이지 못했다. 그는 “북핵문제 해결 지연에 책임 떠넘기기(blame game)를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면서 “미국은 북한이 명백한 비핵화의 의지를 보여준다면 ‘안보위협’을 포함한 모든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진지한 협상에 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가 지난(至難)한 과제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겠지만 북한 비핵화는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최고의 정책 목표”라고 말했다.
“대화의 기회를 걷어차고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을 감행한 북한의 심각한 도발행위가 문제의 본질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뢰(trust)와 확신(confidence)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외교나 협상이 어려운 구조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를 문제 삼는 시각도 있지만 북한은 2·29 합의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장거리 로켓을 발사해 협상 진행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꾸려지는 즉시 당선자 측과 긴밀히 접촉하며 정책 협의를 해 나갈 것이다.”
김정은 체제 1년에 대해서는 “북한을 실제로 변화시킬 정책을 이행하고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지만 판단을 내리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새 지도자가 정치 경제 분야에서 진정한 개혁을 시도하기를 원한다”며 “북핵문제를 포함해 북한 주민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는 결정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은 한국의 대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미 국무부는 상당수의 인력을 서울로 보내 ‘빅 3’ 후보 캠프를 직접 접촉하고 각 후보의 대미정책과 대북정책을 면밀히 파악하고 있다. 한 캠프 관계자는 “면담에서 만난 미 국무부 팀이 질문 리스트를 상세히 적은 두툼한 서류를 꺼낸 뒤 일일이 뭔가를 체크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누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지 본국에서 궁금해하지 않나.
“(웃으며) 모른다고 답했다. 대사관 정치담당들이 사람도 많이 만나고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좋은 보고서도 꽤 나왔다.”
北비핵화 의지 보일땐 ‘안보 협상’ 가능
―누가 가장 한미관계 발전에 적합한 후보라고 생각하는가.
“누가 대통령이 되건 ‘린치핀(핵심요소)’으로서의 한미관계는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돼야 한다. 이미 박근혜 후보, 문재인 후보를 만났고 안철수 후보를 못 만날 이유가 없다.”
―양국 정부가 동시에 전환기를 맞았는데….
“여러 분야에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임기가 3개월가량 남은 현 정부는 물론이고 앞으로 들어설 새 정부와 긴밀한 소통을 유지한다면 권력 전환기에 발생할 수 있는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을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대선 결과에 대해 김 대사는 “정책의 연속성을 원한 것이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강조했던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이나 전략적 재조정(rebalancing) 같은 정책도 가속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대사는 “힐러리 클린턴 장관이 물러나거나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 등 한반도 라인에 조정이 생기더라도 한미동맹 강화나 한반도 안보 공약의 이행은 변할 수 없는 정책기조”라고 덧붙였다.
시진핑(習近平)을 정점으로 하는 제5세대 지도부가 들어선 중국에 대해서는 “미국의 중국 봉쇄 우려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미국 지도부에 건설적인 관계를 바란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며 “세계 주요국 반열에 오른 만큼 책임 있는 역할을 해 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 대사는 “한중관계가 가까워지는 것을 걱정하느냐는 질문이 가끔 나오는데 미국의 대답은 단호한 ‘노’”라며 “중국이 주변국과 잘 지내는 것은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한다”고 말했다.
가까운 한중관계, 美국익에도 부합
―독도와 과거사 문제로 한일관계가 껄끄러운데….
“한국이 민감한 이슈에 대해 오랜 기간 절제하면서 슬기롭게 대처한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한국과 일본이 모두 가깝고 중요한 동맹국이라는 점에서 독도 문제는 미국에도 어려운 문제다. 동북아지역은 물론이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불어닥칠 어려운 도전들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 일본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김 대사는 “10대 두 딸을 키우는 것이 주한 미국대사 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조크를 던졌다. 부인 정재은 씨와 둘째 딸을 데리고 시민들 틈에 섞여 청계천에서 펼쳐지고 있는 서울 등(燈)축제를 구경하며 즐거워하는 김 대사는 평범한 50대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대사 부임 후 8개월 만에 가족이 합류해 ‘기러기 아빠’ 생활을 청산했다. 그는 “딸들이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며 “실수에서도 배울 수 있는 넉넉함을 가질 수 있다면 더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면 늘 숙연해지는 김 대사다. 김 대사의 아버지 김기완 씨(1994년 별세)는 1973년 중앙정보부 파견 주일공사로 근무하면서 김대중 납치사건에 숙명적으로 연루됐다. 부친이 폐암으로 투병할 때 국무부를 1년 휴직하고 간병을 했을 정도로 효심도 지극했던 김 대사는 지난해 11월 미 국무부에서 열린 선서식 당시 “돌아가신 아버지가 이 자리에 계셨으면 무척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라며 울먹였다.
1시간 조금 넘게 진행된 인터뷰 말미에 아버지에 대해 묻자 까다로운 질문에도 미소를 잃지 않던 김 대사의 얼굴이 좀 굳어졌다. 김 대사는 “훌륭한 아버지이자 헌신한 공직자이기도 한 그에게 엄청난 것을 배웠다”며 “모든 인생을 공적 영역에서 현신한 아버지를 보며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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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