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끄는 이색합격자들
《 전국 특성화고(475개교) 대부분이 내년 신입생 원서접수를 시작한다. 서울 충북 세종은 21일 부터, 경남은 22일부터, 대전과 강원은 26일부터다. 지난달 합격자를 발표한 마이스터고 35개교의 평균 경쟁률은 2.88 대 1이었다.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의 인기가 높아지며 지원자가 늘어나는 추세. 내년에 입학하는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 평해공고 가는 이창민-성민 쌍둥이
부모는 망설였다. 아버지 이승규 씨(50)는 “내가 경영 컨설턴트지만 아이들이 마이스터고에 진학한다는 걸 인정하기 어려웠다. 집안에 대학 안 가겠다는 아이가 없는 데다 사회 분위기도 그렇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인천 정각중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형제의 성적도 아까웠다.
학교가 먼 점도 걱정이었다. 가까운 곳의 마이스터고를 권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형제는 확고했다. “원자력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거니까 꼭 평해공업고에 갈래요.”
그러고는 스크랩한 신문 기사를 아버지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안 된다고 걱정한대요. 먼저 취업해도 나중에 사이버대나 재직자 특별전형을 통해 언제든 공부할 수 있어요. 걱정 마세요.” 형제는 오랜 경험을 쌓은 뒤 후배 사원을 양성하는 사내 교수가 되려고 한다.
■ 울산마이스터고 가는 천영준 군
그러다 형이 다니는 학교의 학생들을 봤다. 1학년 2학기 때 삼성전자, 2학년부터 한국수력원자력 현대자동차 포스코 현대중공업의 면접을 보러 다니는 모습을 보고 너무 놀랐다. 얼마 후 그는 울산마이스터고 진학을 결심했다.
어머니 박미영 씨(41)는 서운했다. 큰아들을 마이스터고에 보내고 ‘정말 괜찮은 일꾼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도 말이다. 주변에서도 “큰애 하나면 됐지, 과학고까지 준비했던 애를 뭐 하러 마이스터고에 보내느냐”고 걱정했다.
박 씨는 주변을 살폈다. 1, 2등만 하다 대학에 가도 직장을 못 구해 졸업을 미룬다는 자녀를 둔 부모가 많았다. 마이스터고에 가서 열심히 하면 원하는 일자리를 골라 갈 수 있다는 믿음은 큰아들을 통해 이미 갖고 있었다.
박 씨는 한 가지 바람이 있다. 고졸자라는 이유만으로 직급이나 월급에서 차별을 받지 않았으면 한다.
■ 구미여상 가는 박소정 양
박 양은 처음부터 대학에 꼭 가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고졸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이 너무 심하다고 느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걸 내가 꼭 깨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차피 회계사나 경영 관련 일을 하고 싶은 거라면, 돌아가기 싫었다. 인문계고에 가서 대학에 진학한 뒤 취업하는 건 돈과 시간 낭비라고 봤다. 박 양은 초등학교 때부터 국가공인 정보기술자격(ITQ) 워드프로세서를 포함해 이미 웬만한 자격증은 다 땄다.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건 아니지만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생(초등학교 4학년)을 생각했다. 박 양이 대학에 가면 동생은 중학생이다. 중학생 교육비도 만만치 않음을 박 양은 잘 안다.
박 양은 특성화고 졸업 뒤 바로 취업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 뒤 대학 진학도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당찬 포부가 있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어 사람들이 고졸자를 무시하지 못하게 하는 것.
박 양은 말했다. “기업 공채에서도 고졸자 대졸자를 나누고, 월급에 차이가 있잖아요. 학벌이 아니라 사람 자체만 보고 평가했으면 좋겠어요. 고졸자를 키우는 정책이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