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준 서울고검 검사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수감된 19일 밤 한상대 검찰총장은 기자들에게 e메일로 사과문을 돌렸다.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려도 모자랄 판에 e메일 사과문은 성의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 사건은 미꾸라지 한 마리가 방죽물 전체를 흐린 개인 비리로만 볼 수 없다. 검사가 내사나 수사를 미끼로 9억 원이 넘는 큰돈을 받는 동안 검찰이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면 감찰 기능의 완전한 실패를 의미한다. 한 총장은 조직 어딘가에 김 검사 같은 사람이 또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검찰의 부패는 과거 검찰이 권력에 예속됐던 권위주의 시절의 검찰 견제 세력이 사라지면서 심화하기 시작했다. 독점적 수사지휘권, 영장청구권, 기소권을 행사하는 권력기관을 견제하고 감독할 외부 기관이 없다 보니 검찰은 자정 노력을 게을리하고 무사안일에 빠져들었다. 최근 수년간 잇따라 터진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벤츠 여검사’ 사건과 이번 김 검사 사건이 다 그 연장선상에 있다. 검찰이 특임검사를 임명해 경찰 수사를 막은 것은 검사가 경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경찰에 의해 구속되는 사태를 방치할 수 없다는 검찰의 특권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특임검사가 검찰과 경찰의 관계를 의사와 간호사에 빗대 간호사협회의 반발을 산 것도 그 오만함의 일단(一端)을 보여준다.
검찰은 비리가 터질 때마다 검찰총장 임기제 도입, 검사윤리강령 제정, 특임검사와 감찰본부 신설 같은 제도 개혁을 했지만 별로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인다. 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이 터지고 나서 신설된 감찰본부도 유명무실했다. 한 총장은 사과문에서 “내부 감찰 시스템을 점검해 전면적이고 강력한 감찰 체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제도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검사들의 의식부터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