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 20년… 준중형차 시장의 새로운 시대 열다
자동차회사 입장에서는 소형차 중형차 대형차 3가지 차종만으로 판매량을 늘리거나 수익을 올리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 자동차회사들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준중형’이라는 클래스를 만들었다. 1990년 탄생한 현대자동차 ‘엘란트라’가 최초의 준중형차다. 소형차보다 크기를 약간 키우고 편의장치를 고급화해서, 중형차를 사고 싶지만 사회적 여건 때문에 머뭇거리는 소비자들을 흡수했다.
기아자동차도 1992년에 준중형급 ‘세피아’를 내놨다. 세피아는 날렵한 디자인에 달리기 실력이 좋아 엘란트라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현대차가 1995년부터 내놓은 아반떼 시리즈에 눌려 기아차의 준중형 세단들은 빛을 보지 못했다. 기아차가 세피아 이후 내놓은 ‘세피아2’, ‘스펙트라’, ‘세라토’, ‘포르테’ 모두 아반떼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기아차가 20년간 엘란트라-아반떼의 그늘에 가려 주목받지 못한 설움을 떨쳐내기 위해 새롭게 준중형차를 세상에 내놓았다. ‘K3’다.
K3는 판매 한 달 만인 10월에 7632대가 팔리며 국내 자동차 모델별 판매순위 3위에 올랐다. 1위 아반떼의 9729대에 바짝 따라 붙었다. K3는 출시 후 34일 만에 계약 2만 대를 돌파하며 성공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기존 모델인 포르테와 무엇이 달라졌기에 판매가 몇 배로 뛰었을까.
일단 디자인 측면에서 훨씬 고급스러워졌다. 아반떼와 같은 플랫폼(차체 뼈대)을 사용하지만 볼륨감을 키워 중형차 느낌을 주고, 부드러운 곡선과 직선을 적절하게 섞어 세련미를 더했다. 특히 전면의 인테이크 그릴과 전조등, 후면의 제동등을 차체에 비해 크게 설계해 확실한 존재감을 선사한다.
사이드미러와 도어 외부 손잡이, 면발광 타입 주간 주행등 같은 디자인 소품들도 고급스럽게 다듬어서 디테일을 신경 쓰는 소비자들을 만족시켰다. 전체적으로 차체 각 패널과 부속품 간의 연결이 매끄러워서 과거 어딘지 모르게 어설펐던 단점이 많이 사라졌다.
인테리어도 마찬가지다. 각종 스위치나 다이얼, 송풍구 같은 부속품과 패널이 따로 노는 느낌 없이 일체감을 주며 경계선의 이빨이 꼭 맞아떨어진다. 손으로 작동하는 각 부품의 디자인은 물론이고 터치감도 좋아졌다. 대시보드의 마감 재질도 딱딱한 플라스틱 소재의 사용을 줄이고 부드러운 소프트 스킨을 많이 사용해 싸구려 같은 분위기를 없앴다.
○ 동력 성능은 중형차에 근접
운전대를 움직였을 때 차가 운전자의 명령에 얼마나 빠르게 반응하는지를 나타내는 핸들링과 커브길을 안정적으로 잘 달리는 정도를 말하는 코너링은 평범한 운전자의 입맛에 맞게 조율돼 있다.
승차감 역시 패밀리세단의 성격에 맞게 너무 물렁거리지도 튀지도 않는 수준으로 맞춰졌다. 타이어, 엔진, 바람 소리도 잘 걸러내서 중형차와 비슷한 정숙성을 보였다.
전자식스티어링 시스템을 도입하고 난 뒤 운전대가 너무 가벼워서 주차 때는 편하지만 고속주행 시에는 불안감을 준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을 감안한 듯 콤포트, 노말, 스포츠 3단계로 운전대의 무게감을 조절하는 버튼을 넣은 것도 포인트다.
연료소비효율(연비)은 일반적인 서울시내 주행에서 L당 11km 안팎, 시속 100km로 고속도로를 정속 주행했을 때는 16km 안팎이 나왔다. 시내와 고속도로 주행을 절반씩 했을 경우 L당 13km대가 나와 공인 연비인 14km와 큰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 과분할 정도의 편의장치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연료가 떨어지면 주유 안내와 함께 자동으로 가까운 주유소가 L당 가격과 함께 주르륵 나타난다.
○ 종합 평가
K3는 국산 준중형차 시장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봐도 된다. 차체 크기만 약간 작을 뿐이지 중형차급의 운전 성능과 편의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사실 실내 공간도 10여 년 전의 중형차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어서 4인 가족이 함께 쓰는 패밀리카로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가격 역시 과거 중형차급. 1345만 원부터 시작하지만 웬만한 편의장치를 넣으려면 1700만 원 정도는 줘야 하고 풀옵션 모델은 2145만 원에 이른다. 성능과 편의성이 좋아진 만큼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일반 준중형급에서 이 이상의 차체 강성이나 성능은 오버 엔지니어링일 수도 있고 차 가격도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같은 가격에 잠재력이 더 뛰어난 차를 원하는 것은 영원한 소비자의 마음이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