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가치 상승에 엔화가치 하락 겹쳐 원-엔 환율 16개월 만에 최저
○ 정치가 촉발한 원-엔 환율 급락
원-엔 환율이 빠른 속도로 하락(원화 가치는 상승)하는 배경에는 일본 정치권이 있다. 해외 시장에서 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엔화를 풀어 통화가치를 떨어뜨리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21일 원-엔 환율은 1326.23원으로 마감해 지난해 7월 8일 1299.32원 이후 1년 4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해 원-엔 환율이 가장 높았을 때인 6월 4일 1509.91원과 비교하면 약 5개월 사이에 180원 넘게 하락했다.
○ 원-달러 환율도 하락세 지속
여기에 원-달러 환율도 하락세를 이어가 달러당 1080원 선이 위협받고 있다. 21일 원-달러 환율은 정부의 강력한 구두 개입으로 전날보다 1.0원 오른 1083.20원에 마감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최근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는 국내외 금융·외환시장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상황 전개에 따라 필요하다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강력한 개입 의지에도 달러당 1080원 선을 방어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건희 외환은행 트레이딩부 과장은 “원-달러 환율이 더 떨어지기 전에 달러를 팔아 손실을 줄이려는 기업들이 많아서 달러 매도 물량이 많다”며 “연말까지 1075원까지는 확실히 내려갈 것 같고 1060원대 진입도 가능해 보인다”고 내다봤다.
○ 국내 수출기업 ‘비상’
원-달러 환율 하락세까지 겹치면서 국내 기업 수출 환경은 더욱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고 해외 외환시장에서 엔화가 약세를 보이면 원-엔 환율은 급격히 하락하게 된다. 현재 서울 외환시장에는 원-달러 시장만 있어서 여기에서 결정되는 환율과 도쿄 외환시장의 엔-달러 환율에 따라 원-엔 환율이 자동으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원-엔 환율 하락폭이 커지면서 해외 시장에서 일본 기업에 비해 우위에 있는 자동차, 철강, 조선 업종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엔고 덕분에 일본 차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있었지만 원-엔 환율이 1200원대 초반으로 하락하면 환율 메리트가 사라진다”며 “일본 차와 오로지 품질로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