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꽉 찬 춤의 피사체가 내 운명”
작업대의 최영모 씨. 작업 의뢰를 받으면 4000∼5000장의 공연사진을 찍고 의뢰자가 이 중 40∼50장을 골라 가져간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서울 강북에서 잠수교로 진입하기 직전 오른쪽 주유소 건물의 지하실. 프리랜서 무용사진가 최영모 씨(56)의 작업실이다. 창고로 쓰던 330㎡(100평) 남짓한 이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그는 밤을 새워 작업해 연꽃처럼 화사한 이미지들을 뽑아낸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던 1983년부터 본격적으로 무용사진을 찍어왔으니 올해 딱 30년이 됐다.
무용사진을 찍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움직이는 피사체를 찍는 것도 어렵지만 어두운 조명에서 움직이는 피사체를 찍는 것은 더 힘들었다.
30년 동안 경험을 쌓은 그는 그래서 디지털 시대에도 건재하다. 많은 무용인이 그의 무용사진을 최고로 꼽는다. 최 씨가 1년에 작업하는 무용작품은 평균 50∼60개. 작품당 리허설과 본공연을 합쳐 평균 4000∼5000장의 사진을 찍는다. 필름 카메라로 작업할 때는 720장 정도가 고작이었지만 디지털로 작업하면서 크게 늘어났다. 가장 최근에는 국립발레단의 ‘창단 50주년 갈라쇼’와 창작발레 ‘왕자 호동’을 찍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 버리는 순간순간을 그는 어떤 전략으로 잡아낼까.
“여러 방법을 시도했어요. 직관적으로 찍어보기도 하고, 리허설을 보고 동선과 동작을 파악한 뒤 본공연 때 원하는 장면을 노리고 찍어보기도 했죠. 하지만 결론은 느낌 오는 대로 그냥 찍는 게 정답이에요. 오히려 (원하는 순간을) 기다리면 놓치는 경우가 더 많아요.”
무용사진의 아이러니는 따로 있다. 공연이 실제론 실망스러워도 사진은 멋있어 보일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점. 최 씨는 “그렇긴 해도 사진이 공연의 모습을 정직하게 반영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공연사진 작업과는 별개로 사진 작품을 만들기 위한 작업도 한다. 1993년 전시회와 함께 사진집 ‘당스 뉘(DANSES NUES)’’를 낸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안은미, 홍승엽, 제임스 전 부부 등 지금 국내를 대표하는 무용가 11명의 누드사진으로 화제가 됐다.
“에너지가 넘치는 건강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만큼 황홀한 것은 없다”는 그는 19년 전 ‘당스 뉘’보다 더 강렬한 느낌의 작품들로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3년 최영모 씨의 무용사진 작품집 ‘당스 뉘’에 실린 사진. 무용가 홍승엽(위)과 박호빈을 담았다. 최영모 씨 제공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