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호 논설위원
노동자에 대한 노동자의 착취 비호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는 ‘반석기업’ ‘성광기업’ 등이 쓰인 조끼를 입은 근로자들이 승용차를 조립한다. 파견 나온 사내하청 근로자들이다. 같이 일하는 현대차 정규직은 회사 이름이 아니라 ‘의장 3부’ 등 부서 이름의 조끼다. 울산공장 앞 송전탑에 한 달 넘게 매달려 ‘사내하청의 전면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는 최병승 씨도 한때 예성기업 조끼를 입었다. 자동차 조선 철강 병원 은행 등 비정규직이 없는 업종은 거의 없다.
비정규직 급증은 기업과 정규직 노조의 합작품이다. 기업은 외환위기로 구직자 협상력이 크게 약화되자 이를 틈타 싸고 다루기 쉬운 비정규직 채용을 남발했다. 정규직 노조는 자신의 ‘고임금 및 고용 철밥통’에 따르는 경영상의 부담을 비정규직에 떠넘기는 것을 묵인·방조했다. 정규직이 회사와 결탁해 600만 비정규직을 수탈하는 구조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서는 기업체는 물론이고 양대 노총 산하 조직노동자들이 먼저 양보해야 한다. 회사가 정규직 전환에 따른 부담을 견딜 수 있도록 임금 감축을 각오해야 하며 고용유연화도 수용해야 한다. 힘센 노조가 “비정규직 철폐” 구호만 외치면서 철밥통을 내놓지 않는다면 비정규직을 ‘동지’가 아니라 계속 착취 대상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경제민주화 논의가 무성하다. 하지만 노노 착취구조를 놔둔 채 경제민주화를 말할 수는 없다.
고용이 유연해지면 비정규직 문제만 풀리는 게 아니다. 기업이 해고 부담 없이 필요한 만큼 고용할 수 있게 되므로 전체 일자리 수는 오히려 늘어난다. 청년실업이나 정년연장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 현재 한국의 해고 비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배다.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2002년 시작해 지금껏 지속되는 ‘하르츠 노동개혁’도 핵심은 해고 유연화였다. 그 덕분에 독일은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도 유럽의 성장엔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통령 되겠다며 노조에 아첨해서야
한국의 대선후보들은 노동 유연화와 거꾸로 가고 있다. 그리고 기득 노조 편들기에 바쁘다. 이것이 노노 양극화를 고착하는 정치의 실패임을 정녕 모르는가. 1700만 근로소득자의 10%인 조직근로자(노조가입 근로자) 170만 명의 조직화된 힘에 아첨하면 이들의 기득권만 더 견고해지고 상대적으로 힘없는 근로자들의 권익은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