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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박용]국제기구 유치 후진국

입력 | 2012-11-22 03:00:00


싱가포르는 1990년대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글로벌 기업 지역본부를 집중 유치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교육 의료 관광 금융 문화산업으로 투자유치 대상을 다변화했다. 2008년 싱가포르 현지에서 만난 한 한국 기업인은 “싱가포르 정부가 요즘 외국인 모객(募客) 효과가 큰 국제 비정부기구(NGO)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런 노력으로 세계야생동물기금협회(WWF) 지역본부 등이 싱가포르에 둥지를 틀었다. 공단을 만들고 세금을 깎아 주며 외국기업 유치활동을 펴던 한국보다 몇 수 앞을 내다본 전략이었다.

▷한국 정부도 어제 국제기구 유치 활성화 방안을 마련했다. 국제기구를 끌어와 국격(國格)을 높이고 외국인 투자와 인재를 불러들이겠다는 구상이다. 최근 인천 송도 유치가 확정된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은 300∼500명이 상주하고 연간 100여 차례 넘게 국제회의를 열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거주자와 방문객이 늘면 마이스(MICE)산업, 즉 회의 포상관광 컨벤션 전시회와 관련된 서비스업이 살아나고 일자리가 증가한다. 일회성 행사인 올림픽, 월드컵보다 지속적으로 경제효과를 일으키는 장점이 있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11위의 유엔 분담금을 내는 국가지만 국제기구 유치 실적은 초라하다. 2만2000여 개의 국제기구 사무국 중 한국이 유치한 기구는 43개뿐이다. 미국(3646개) 벨기에(2194개) 프랑스(2079개)는 물론이고 일본(270개) 태국(133개) 싱가포르(86개) 필리핀(75)보다 적다. 한국에 있는 국제기구의 평균 근무인원은 GCF를 제외하면 외국인 1.8명을 포함해 11.3명에 불과하다. 동아시아지방정부 관광포럼(춘천), 국제무형문화도시연합(강릉)처럼 지방자치단체가 자체 예산으로 운영하는 ‘무늬만 국제기구’도 있다.

▷한국은 강대국인 중국 일본 러시아를 끼고 있다. 지정학적 위치, 정보기술(IT) 게임과 같은 산업적 강점, 경제개발 분단 녹색성장 등의 경험이 국제기구 유치 경쟁의 차별화 포인트다. 하지만 지자체 간에 무리한 유치 경합이나 퍼주기 경쟁은 경계해야 한다. 말도 안 통하고 외국인 병원과 학교마저 부족한 한국을 선호할 국제기구는 많지 않을 것이다. 서비스 분야의 규제를 풀고 외국인 거주 환경을 개선해야 국제기구가 제 발로 찾아올 수 있다.

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