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3시경 전남 고흥군 도덕면 주모 씨의 흙집이 불에 타 무너져 있다. 고흥=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곤히 자던 외손자가 갑자기 오줌이 마렵다며 주 씨 부부를 깨웠다. 주 씨 부인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 촛불을 켰다. 이 초는 주 씨가 받은 일당 5만 원으로 전날 사온 6개 초 중 하나였다. 외손자가 요강에 소변을 해결하자 이들은 다시 잠들었다.
잠시 뒤 주 씨는 머리가 뜨겁다는 것을 느끼고 잠에서 깼다. 초가 쓰러지면서 불이 붙어 천장으로까지 불이 옮아붙어 있었다. 주 씨는 부인을 깨워 탈출하려 했지만 부인은 집을 지키기 위해 “내가 불을 꺼볼 테니 얼른 119에 신고하라”고 했다. 주 씨 동생 소유였던 이 흙집은 66m²(약 20평)로 좁았지만 이들이 머물 수 있는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신고를 하고 돌아와 보니 흙집은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주 씨는 부인과 외손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당황했다. 집 앞에서 가족 이름을 부르던 그의 앞에서 화마는 두 사람을 삼켜버렸다.
소방대원 20명이 오전 4시 12분 불길을 잡았지만 주 씨의 부인과 손자는 허물어진 흙집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주 씨는 얼굴에 2도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주 씨는 뒤늦게 부인과 손자가 숨졌다는 말을 전해 듣고 실신했다.
전남 고흥경찰서 관계자는 “주 씨가 방문을 열고 나가면서 방안에 산소가 공급돼 불길이 번진 것 같다”고 말했다. 주 씨의 딸은 “한전에서 전기를 끊어 냉장고는 물론이고 불조차 켤 수 없어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울먹였다. 그러나 한전 측은 최소한의 가전제품은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반박했다. 경찰은 2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식을 통해 자세한 화재 원인을 파악할 방침이다.
고흥=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