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린 로빈슨 디아지오 마스터 블렌더
모린 로빈슨 씨는 “싱글몰트 위스키는 제품마다 개성 있는 향과 맛이 있어서 스스로의 기호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술”이라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디아지오에 입사한 뒤에도 7∼8년간 내가 한 일은 화학자들이 연구실에서 흔히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양한 위스키를 접했지만 그 위스키는 내게 그저 그래프용지에 성분비율로 표시되는 연구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삶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남다른 후각 덕분이었다. 위스키를 재료로 한 반복적인 실험에서 나는 위스키 특유의 맛과 향을 동료들보다 훨씬 잘 구분했다. 스스로에게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달은 나는 틈날 때마다 위스키의 향과 맛을 음미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입사 8년차가 되던 해에 사내에서 마스터 블렌더를 뽑는다는 공고가 났고 난 과감하게 도전했다.
현재 디아지오에는 여성 마스터 블렌더가 한 명 더 근무하고 있다. 우리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뛰어난 맛과 향에 대한 섬세한 표현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매일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는 위스키 샘플의 풍미를 체크하는 것은 기본이고 위스키의 질적 차이를 감지하기 위해 온도나 담는 용기의 차이에 따른 섬세한 변화까지 잡아내려 애쓰고 있다.
맛과 냄새를 표현하는 언어도 세밀한 차이까지 구분해 기록하기 위해 끊임없이 가다듬고 있다. 예를 들어 풋풋한 위스키 냄새를 맡았을 때 대부분의 마스터 블렌더가 쓰는 ‘풋사과 냄새’라거나 ‘마른 풀 냄새’ 같은 표현 대신 ‘투명한 초록빛깔 향기(Glassy green)’라고 기록하는 식이다.
위스키는 다양한 맛과 향을 품고 있다. 한 모금 입에 머금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강렬한 스모키 향부터 이후 밀려오는 과일과 타닌, 초콜릿(또는 크림 같은 질감)의 맛과 향까지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풍부한 맛과 향을 선사한다.
한 곳의 양조장에서 만들어지는 위스키 원액으로 만드는 싱글몰트 위스키는 저마다 개성 있는 맛과 향을 지니고 있다. 다양한 위스키를 섞어서 만드는 블렌디드 위스키가 오페라라면 싱글몰트 위스키는 개성이 강한 솔로 바이올리니스트에 비유할 수 있다. 때로는 웅장한 오페라보다 더 큰 감동을 주는 솔로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처럼 싱글몰트 위스키는 독창적인 맛과 향으로 나를 매료시키곤 한다.
더 멋진 여행을 원한다면 다양한 음주 방법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다. 싱글몰트 위스키를 즐기는 가장 무난한 방법은 얼음을 넣어 천천히 녹여 마시는 온더록스다. 차가운 얼음은 위스키 안에 담긴 여러 단계의 맛과 향을 차근차근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얼음 없이 스트레이트 잔에 따라 마시거나 진저에일이나 콜라 같은 소다음료와 섞어 마시는 것도 때로는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다.
색다른 만족을 원한다면 싱글몰트 위스키 한정판에 도전해보자. 특정한 해에 한정된 양만을 생산하는 싱글몰트 위스키 한정판은 다시 경험하기 어려운 강렬한 맛과 향의 추억을 당신에게 선물할 것이다.
모린 로빈슨 ‘싱글톤’ 마스터 블렌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