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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ative Report]김원중은 마침내 프라다를 입는다

입력 | 2012-11-23 03:00:00

동양인 남성모델로는 처음 프라다 무대에 선 김 씨
‘30전 31기’ 밀라노 패션위크 도전기




‘이제 시작’이라며 다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김원중 씨가 활짝 웃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무늬가 들어간 저 옷은 빼버려야겠어요. 전체 콘셉트와 안 맞아요.”

6월 24일 오후 2시. 그녀의 말에 모델 5명의 얼굴색이 새하얘졌다. 그들은 다른 모델들과 달리 하필이면 무늬가 들어간 그 옷을 입고 있었다. 프라다를 움직이는 수석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가 ‘뺄까?’도 아니고 ‘빼겠다’고 단언했기에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빼기로 한 옷을 입은 모델 5명 중에 김원중 씨(25)도 들어있었다. 믿기지 않았다. 조금 전만 해도 그는 아시아 남성 최초로 프라다의 컬렉션 무대에 서는 주인공이 될 예정이었다. 새벽에 숙소를 나설 때 얼마나 행복해하며 길을 걸었던가. 왜 하필 나는 빠질 옷을 입었을까. 심장이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그는 자리를 떠날 수도 없었다. 쇼는 4시간 뒤 시작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게실 소파에 앉았다. ‘하나님,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입에서 간절한 기도만 쏟아졌다.

이곳이 한국이었다면 무대 뒤 구석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일 따윈 없었을 것이다. 한국 패션업계에서는 잘나가는 모델이지만 밀라노에서 그는 무명일 뿐이었다.

○ 꿈의 런웨이

6월 열린 ‘2013 봄여름 밀라노 패션위크’ 프라다 컬렉션 무대에 선 모델 김원중. 그는 아시아 남성모델 최초로 프라다 무대에 올랐다. 프라다 제공

김 씨가 모델이 된 것은 우연이었다. 원래 디자이너를 꿈꿨다. 전역 후 패션업계 일을 배우고 싶은 마음에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의류매장에서 판매사원으로 일하던 어느 날 영화처럼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모델업계 관계자가 “모델 해보고 싶지 않으냐”고 했다. 2009년 8월, 22세 때였다.

그는 욕을 먹고 혼이 날 때마다 더 연습했다. 사진작가의 성향을 미리 파악해 원하는 콘셉트의 눈빛과 포즈를 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큰 키, 하얀 피부와 주근깨, 눈에 띄는 패션감각이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모델 생활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국내 정상급 모델을 향해 가고 있었다.

파리 밀라노 뉴욕 런던. 세계 4대 패션위크가 열리는 이들 네 도시는 모든 패션모델에게 꿈이자 동경의 대상이다. 어린 시절 누구나 대통령이나 과학자를 꿈꿔 보는 것처럼 모델에겐 장래 희망 같은 무대다.

국내 여성 모델 중에는 2000년대 중반부터 샤넬, 마크제이콥스 같은 빅쇼에 서는 이들이 나왔다. 1998년 디즈니의 만화영화 ‘뮬란’의 여주인공처럼 서구인이 생각하는 아시아형 미인이 주목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시장이 커진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서구 시각에서 아시아 남성은 딱히 생각나는 이미지가 없었다. 2 대 8 가르마의 홍콩 누아르 배우 스타일을 떠올리는 정도였다. ‘롤 모델’조차 없었기에 김 씨에게 해외 진출은 말 그대로 막연하기만 한 꿈이었다.

○ 아시안이 아닌 코리안으로

2010년 모델 강소영 씨가 샤넬 오트쿠튀르 쇼에 처음 섰을 때 현지 언론과 패션업계 인사들은 색다른 수식어로 그녀를 평가했다. 아시안 모델에 으레 붙던 ‘아시아의 신비한 미(美)’가 아니라 ‘인형같이 예쁘고 우아한’이란 수식어였다.

10여 년 동안 강 씨를 포함해 한국 모델들의 해외 진출을 돕던 정진희 앨컴퍼니 대표의 머릿속이 밝아졌다.

‘처음에는 아시아인이라면 다 비슷하게 생겼다고 보더니 이제는 개인의 매력이 보이기 시작했구나. 지금이야말로 개성 있는 한국 모델이 해외에 진출할 타이밍이야.’

한류를 통해 중국인 일본인과는 다른 한국인 특유의 개성과 매력을 알아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정 대표는 김원중 씨의 개성이라면 해외에서도 해볼 만하다고 믿었다. 김 씨도 막연했지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다. 그들은 의기투합해 꿈을 현실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김 씨와 정 대표는 올해 1월 파리에서 현지 모델 에이전시의 문을 두드렸다. 큰 키와 늘씬한 몸매, 주근깨 등이 파리의 분위기와 잘 맞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진을 미리 보냈을 때는 관심을 보이던 사람들의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내가 분위기를 잘못 파악한 건가.’ 아시아 남성은 워낙 적게 뽑히니 모델 에이전시도 덜컥 계약하는 게 부담인 듯했다.

모델 에이전시들이 반응을 안 보이니 브랜드 캐스팅 오디션에도 갈 수조차 없었다. 축제 같은 파리 패션위크를 구경꾼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유럽까지 왔는데 밀라노도 가볼까?’

마초 스타일의 근육질 남성 모델을 좋아하기로 유명한 밀라노 디자이너들. 처음엔 ‘김원중 스타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던 도시다. 하지만 파리에서 한 달을 머물다 보니 자신이 생각한 이미지와 현지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지 반응을 예측할 수 없을 땐? “그냥 부닥쳐 보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밀라노에서는 바로 반응이 왔다. 오히려 에이전시를 골라야 하는 처지가 됐다. ‘동양 모델 같다’라기보다 ‘위트 있고 독특하다’는 평을 들었다. 계약을 하고 6월 캐스팅 오디션을 기약하며 한국으로 돌아갔다.

○ 서른 번 떨어져도 괜찮아

현지 에이전시와 계약했다고 끝난 게 아니었다. 모델 에이전시들이 고르고 또 골라 보낸 ‘후보 모델’만 많게는 200∼300명씩 있었다. 이 중에서 10%인 20∼30명만 무대에 선다. 무대에 서게 되는 행운의 모델 중 아시아 남성은? 아예 없거나 한 명뿐이었다. 그마저도 거대한 시장 규모를 앞세운 중국 모델에게 빼앗기기 일쑤였다.

현지 모델 에이전시도 김 씨에 대해 썩 적극적이지 않았다. 김 씨가 믿을 것은 자신뿐이었다. 무작정 오디션에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밀라노에서만 30개 오디션에 참가했다. 한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 하우스 앞에서는 말 그대로 쫓겨났다. 경호원들이 오디션장에도 못 들어가게 했다. 에이전시로부터 후보 모델이라는 정보조차 못 받았다는 것이다.

시간이 나면 광장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을 봤다. 10분 단위로 e메일과 전화를 확인했다. 새로운 e메일이 와서 열어 보면 ‘다음 기회에’라는 거절 내용이었다. 이러다 빈손으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지 초조했다.

그렇다고 상처받고 위축되지는 않았다. 일에 대해 거절한 것이지 나 자신이 거부당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내일 프라다 오디션에는 어떻게 하고 갈지에 집중했다. ‘프라다 스니커즈를 신고 가면 눈길을 한 번 더 받을 수 있겠지? 감각을 뽐내려면 청바지에 어떤 옷을 입을까….’ 오디션장에 가는 길에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명품 브랜드 ‘에트로’였다. 드디어 김 씨가 걸을 런웨이가 밀라노에 생긴 것이다.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쿨한 태도를 유지하려 했어요. 그들도 연연하는 모델보다 유머 있고 밝은 사람을 좋아하니까요.”

서른 번 떨어졌다는 것은 서른 번 현지 디자이너 브랜드 사람들을 만났다는 얘기다. 경험할수록 배우는 게 있었다. 그의 긍정적인 태도와 에너지, 신선한 이미지는 결국 프라다에서 통했다. 합격 e메일을 받은 것이다.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해냈다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꼬박 두 시간 동안 울다 소속사인 정 대표에게 전화했다.

“누나, 우리가 반 농담으로 ‘까짓것, 프라다 쇼에 서고 오지 뭐’ 했던 게 진짜가 됐어. 그냥 해본 말이 현실이 된 거야.”

○ 이제 시작이다

6월 24일 오후 4시. 두 시간이 1년같이 느껴졌다. 그때 기적 같은 소식이 들렸다. 빼기로 한 다섯 벌 대신 방금 새 옷 세 벌이 완성됐다는 것이다. 잘릴 뻔한 모델 다섯 명 중 세 명이 남게 됐다. 그도 살아남았다.

자주색 팬츠에 멋진 재킷을 걸치고 힘차게 런웨이를 걸었다. 아무리 봐도 자신이 입은 옷이 제일 아름다운 것 같았다. 그가 걸어 나가는 순간 조명이 비쳤다. 채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 그는 밀라노 패션위크의 주인공이었다. 또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이제 진짜 시작이야.’

그는 2013 봄여름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프라다뿐 아니라 에트로와 코스튬내셔널 쇼에도 섰다. 9월 뉴욕 패션위크에선 디자이너 브랜드인 토미힐피거와 페리엘리스, Y-3 무대에도 올랐다.

이제는 내년 1월 파리에 다시 도전할 준비를 하고 있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보다 조금 알았을 때의 도전은 더 겁이 난다. 사람들의 기대가 커진 것도 부담이다. 괜히 꿈만 좇다가 한국에서의 좋은 일을 놓칠까 걱정도 된다. 그래서 한 번 런웨이를 걸은 것으로 만족하고 한국으로 되돌아오는 모델도 적지 않다.

하지만 김 씨는 일단 앞만 보기로 했다. 그도 못 본 한국 드라마에 대해 묻고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좋다고 말하는 해외 톱모델도 여럿이었다. 영어공부를 하며 자신을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불나방처럼 화려한 것만 찾고 싶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참고 참으며 목표만 보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행복하고 즐거워야 관객들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느낄 거예요. 그냥 무대에 서는 게 즐거운 만큼 계속 도전하려고요.”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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