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감에 없는 벌레 ―신동옥 (1977∼ )
옛 애인에게 받은 속옷을 셔츠를 입고 옛 애인에게 받은 바지를 입고 나선다
옛 애인에게 받은 안개를 바람을 입고 옛 애인에게 받은 황사를 입고 나선다
변절기(變節期), 잿빛 웃음으로 낱장의 표정을 여미다
―우리 언제 다시 천둥과 우레 눈보라 속에서 다시 만날까
―이 소란이 끝나고 누울 때 누가 승자인지 드러나겠지
그 많았던 오해와 모략과 끝끝내의 말들
오래 귀담아 들을수록 거짓은 내밀해서 점점 달콤해져만 가는 것인데
중독자여, 나는 1초의 삶을 위해 24시간 죽는가
깨지 않아도 좋을 오랜 꿈속에 갇힌 번데기처럼
화자는 옛 애인에게 받은 속옷과 셔츠와 바지를 입고 집을 나서는데, 그 심정이 축축한 안개와 황사바람을 입은 듯하다. 그렇게 처량하고 불편하건만 변절한 그녀를 끝내 벗지 못하다니, 나는 벌레야, 벌레! 벌레 중에서도 번데기지. 이 징글징글한 중독, 옛사랑의 거짓 달콤함에 갇힌 벌레!
그래, 시인이여, 당신 속을 내 알겠네…. 내, 독한 ‘배갈’이라도 한 병, 같이 마실 시간은 없고, 보내주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