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이는 불빛은 행복하게 보이는 것 같아요”
‘옥탑방 왕세자’(SBS·2012년)
“이야, 이런 것도 받아보고. 수의사가 좋긴 좋네.”
이미 여러 번 당해본 경험이 있는 눈치였다. 가끔 동생은 한밤중에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는 담배 한 개비를 물고 현관문을 소리 나게 닫으며 뛰어 나가곤 한다.
드라마 ‘옥탑방 왕세자’에서 세나(정유미)가 말한다. “멀리서 보이는 불빛은 행복하게 보이는 것 같아요.”
세나는 나쁜 여자였다. 수많은 거짓말로 자신을 포장했고 진정성이라고는 없이 가까운 사람들조차도 자신의 성공을 위한 도구 정도로 여겼다. “어떻게 저럴 수가”라는 말을 연발하게 만드는 악녀의 전형이었다. 조선시대에서 타임슬립(time slip·시간여행을 뜻함)해 현대로 온 왕세자 이각(박유천)은 처음엔 포장된 세나의 겉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연못에 빠져 죽은 왕세자빈과 똑같이 생긴 세나와 자신이 불시착한 옥탑방 주인 박하(한지민) 사이를 오가며 갈팡질팡했다.
악녀이기만 한 세나가 안쓰럽게 보인 적이 있다. 이각과 함께 남산타워에 올라 야경을 내려다보며 먼 불빛에 대한 대사를할 때였다. 이어 그녀는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안을 들여다보면 싸우는 사람들도 있고 슬프거나 외로운 사람들도 많겠죠”라고 했다. 욕망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그녀가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없는 아픈 현실의 굴레가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오며 동생이 말했다. 둘 다 집에 와 잠만 자고 나가기 바쁘니 그나 나나 서로의 먼 불빛만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보여?”
“기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내 여자친구의 친구가 물어봐달라고 했대. 어떻게 준비하면 되는 거야?”
“많이 읽고, 많이 써봐야지.” 아마 그 친구가 수없이 들었을 원론적인 이야기들….
드라마에서 세나의 말을 듣고 이각이 묻는다.
“세나 씨는 어떤 편인가요? 멀리서 봐야 아름다운가요, 가까이에서 봐야 아름다운가요?”
“글쎄요. 저는 제 모습이 안 보이니까요.”
휴대전화를 들어 화면 속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점점 더 허전해지는 앞머리에, 탄력을 잃은 피부. ‘가까이’는 이제 글러 먹었다.
“직접 그 친구랑 통화 한번 해줘.” 소파에 앉아 여자친구와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던 ‘동거인’이 말했다. 그래. ‘멀리서’나마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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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 동아일보 기자. 가까이에서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