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논설실장
대규모 청중동원 유세는 우세를 과시해 밴드왜건(악대마차) 효과를 내려는 선거운동 방식이다. 길거리를 행진하는 서커스단의 악대마차 뒤를 사람들이 줄지어 따라가는 풍경에서 유래된 말이다. 여의도 100만 청중의 10배, 20배에 이르는 시청자가 대선 후보를 안방에서 비교할 수 있는 TV 토론이 등장하면서 100만 청중 동원 유세는 역사의 유물이 됐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TV 토론은 지상파 시청률이 18.8%였지만 케이블까지 합하면 24.3%가 나왔다. 전체 유권자를 4000만 명으로 잡으면 1000만에 가까운 시청자가 문-안 TV 토론을 지켜봤다는 얘기다. 문 후보의 지지도는 상승세를 타고 있었고 안 후보는 하강하는 추세였다. 이러한 흐름을 되돌릴 수 없는 대세로 만든 것이 TV 토론이었다. 문-안 토론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문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안 후보는 강의실에서 학생에게 질문을 던져 놓고 답변을 들어 주는 교수 스타일이었다. 문 후보는 파고들고 안 후보는 수줍어했다.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운동은 후보들이 민생 현장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고 신문 방송이 이를 보도하는 방식이 주류를 이룬다. 캠프의 참모들이 사전에 설정해 놓은 환경에서 후보와 유권자의 만남이 연출된다. 이러한 이벤트를 통해서는 위기대응 능력을 비롯한 진정한 자질을 파악하기 어렵다. 인터뷰, 광고, 선거운동 홈페이지도 일방적인 소통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이에 비해 TV 토론은 후보들이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 상대의 질문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시장이나 백화점에서 경쟁상품을 비교하듯이 후보들의 장단점을 살펴볼 수 있다. 1960년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의 TV 토론 이래 52년 동안 경험이 축적된 미국에서는 투표일 출구조사에서 압도적인 다수가 TV 토론이 대선의 소통 방식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것이라고 응답했다.
TV 토론은 장점이 많은 선거 소통 방식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관점도 있다. 시청자들이 TV 토론을 보고 나서 지지 후보를 바꾸기보다는 이미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견해를 강화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시청자들은 좋아하는 후보가 서툴게 대응하거나 실수하는 모습은 무시하고, 반대 후보가 잘못하면 과장해서 보는 경향이 있다. TV 토론이 국가의 현안에 대해 실질적이고 상세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법이라기보다는 토론의 내용이나 형식이 피상적이며 실질보다는 이미지와 스타일을 중요시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가 통치 능력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꾸며 낸 모습을 잘 보여주는 후보가 높은 평점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TV 토론 효과보다는 유권자들이 우세한 후보 쪽에 편승하는 밴드왜건 효과가 더 크다는 분석이 있다.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하고 나서 일정 기간 후 한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우세한 흐름을 형성하면 최종 대선 결과에서 한 번도 뒤집어지지 않았다. TV 토론이 판세를 결정적으로 바꿔 놓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가던 후보의 토론 실력이 나았거나, 뒤지던 후보의 토론 실력이 우월하지 못했다는 논리도 성립할 수 있다. 2007년 이명박-정동영 후보의 대결처럼 530만 표 차가 나는 선거에서는 TV 토론이 반전의 계기가 되기 어렵지만 오차범위 내에서 다투는 박빙의 선거가 벌어지면 1, 2위가 뒤바뀔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고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말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차 TV 토론에서 밋 롬니 공화당 후보에게 패배하는 바람에 역전의 위기를 맞았다. 그가 2, 3차 토론에서 이를 복구하지 못했더라면 대선에서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알 수 없다.
TV토론이 박빙 판세 바꿀 수도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