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손흥민을 키웠다고? 천만의 말씀… 좋은 선수 찾기 위해 발품 팔았을 뿐
숨 막히는 접전 끝에 8년 만에 청소년 축구팀의 아시아 대회 우승을 이뤄낸 이광종 감독. ‘한국 청소년 축구의 대부’ ‘연령별 축구지도의 달인’이라 불리는 그는 청소년 축구라는 음지에서 인재들을 키워내 한국 축구의 오늘을 만든 숨은 공로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수비수들까지 공격에 투입한) 막판 작전이 파격적이라는 평이다.
“어느 지도자라도 그랬을 것이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공격에 집중하게 돼 있다.”
“8강 이후부터는 비기면 승부차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랬다.”
―(승부차기에) 특별한 비결이 있나.
“없다. 성장기에 있는 선수들이라서 공 차는 방법이나 골키퍼 심리를 알려줬다.”
그의 말은 지나친 단답형이었다. 지난 10여 년간 신문에 실린 그에 대한 기사검색을 해보아도 해당 경기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가 전부였다. 사실 인터뷰 섭외도 쉽지 않았다. 공(功)을 자랑하는 자리를 고사하는 태도가 의외였다.
축구는 전쟁, 공 뺏기는 것 용서하면 안돼
“유명해지는 게 뭐 좋나. 축구만 열심히 하면 되지…. 기사 나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늘 이겼어도 내일 질 수 있는데 지금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사인해 달라고 할 때도 해주기는 하지만 속으로 ‘이런 걸 어디에 쓰려고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웃음).”
―이번 우승이 2004년과 다른 점은 걸출한 스타플레이어 없이 이룩한 성과라고들 하더라. 떠날 때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무관심이 서운하지는 않았나.
“선수들이 10대 청소년이어서 남들의 시선에 많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럴수록 지도자는 자신감을 주는 게 필요하다. ‘남들이 약체라고 하는데 너희들은 자존심도 없냐’고 했다. ‘제대로 실력을 보여주자’고 했다. 마지막 승부차기 할 때에도 ‘지금까지 정말 잘했다. 져도 좋다. 자신감 있게 차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 감독은 일반인에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지만 축구계에서는 ‘한국 청소년 축구의 대부’ ‘국내 최고의 청소년 전담 스페셜리스트’로 정평이 나 있다. 2004년 월드컵을 앞두고 풀뿌리 축구를 키워야 한다는 방침에 따라 2000년 대한축구협회가 유소년(12∼15세) 육성 시스템을 출범시키면서 채용한 전임 지도자 5명 중 한명이다.
이 감독은 2002년 15세 이하(U-15) 대표팀과 2005년 18세 이하(U-18) 대표팀 감독대행, 2004년부터 4년간 대한축구협회 유소년 전임 지도자들의 팀장을 맡았으며 2009년 국제축구연맹(FIFA) U-17 월드컵 사령탑으로 첫 세계대회에 출전해 한국을 22년 만에 8강에 올려놓기도 했다.
―2000년 전임 지도자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남아 있다. 남들처럼 주목받고 대접받는 프로팀 지도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
유명해지는게 중요하나, 열심히 축구하면 되지
“승부에 대해 지도자가 갖는 스트레스는 어느 팀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협회에 있으면 세계 축구 흐름을 경험할 수 있고 또 대표팀만 맡고 있어 매일 훈련을 시키는 입장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여유롭고 자유롭다. 뭔가에 얽매이는 생활은 싫다.”
그는 김포 통진고와 중앙대를 졸업한 뒤 1987년 유공에 입단해 1997년 수원에서 은퇴했다. 1987년 국가대표, 88년 올림픽대표 선수를 지내긴 했지만 스스로도 “아쉬움이 많았던 선수생활이었다”고 한다.
“지도자가 봤을 때 말을 잘 듣지 않는 타입이었다(웃음). ‘때리면 축구 안 한다’고 할 정도였다. 되돌아보면 너무 고집이 세 더 훌륭한 선수가 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선수들이 나 같은 아쉬움을 갖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다른 나라 실력은 지금 어떤가.
“아시아 선수들의 실력이 막강해지고 있다. 이번 경기에서도 이란이 개인기가 더 뛰어났다. 하지만 수비가 느리다는 점에 집중해 파고들었다. 이라크 선수들도 잘했다. 먹고살기도 힘든 나라가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했는데 이라크 감독이 ‘우리는 영혼을 판다’고 하더라. 역시 정신력의 힘이다.”
―요즘 청소년들이 정신적으로 많이 약해졌다.
“그래서 마인드를 잡아주려고 노력한다. ‘운동은 철저하게 승부의 세계이며 투쟁의 세계다. 이기려면 투쟁력과 전투력이 있어야 한다’ ‘볼을 빼앗겼을 때 스스로 그 상황을 용서하면 안 된다’ ‘지는 것을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순간, 부드러운 인상 속에서 날카로운 눈매가 도드라졌다.
―요즘 학교 현장에는 학교폭력, 왕따가 횡행하고 자살률도 높다. 아이들을 뛰게 해야 한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동의하나.
“심각한 상황이라고 본다. 체격만 좋아졌지 체력은 떨어졌다. 청소년들을 직접 지도하면서 느끼는 건데 운동을 많이 하면 잡생각이 없어진다. 배려심도 커지고.”
―예민한 시기의 청소년들을 훈련시키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
“글쎄, 좀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절대 공개적으로 야단치지 않는 정도? 개인면담을 할 때에는 문제가 뭔지 직설적으로 말한다. 가끔 겁을 주기도 한다(웃음).”
옆에 앉아 있던 협회 홍보국 차영일 과장이 “이 감독은 선수들한테 ‘싸가지가 없어졌다’ ‘유명해졌다고 까부는 것 같다’고 말해 버린다. 그게 애정으로 야단치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 선수들이 따르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선진국의 경우 팀 심리학자가 코치진에 포함된다고 들었다.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학교 없어
“맞다. 유럽 프로팀은 뭔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선수가 감독과의 면담을 요구할 때 심리학자와 먼저 대화한다. 청소년팀도 마찬가지다. 스트레스 중압감, 긴장을 완화하는 방법, 감독과의 관계에서 오는 여러 문제를 다루는 심리 분야에 대한 도움이 절실하다.”
―청소년 시절에 몸을 혹사해서 나중에 고생하는 선수를 많이 봤다.
“그래서 청소년 체육은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강도 높은 훈련은 18세 이후 근육이 형성된 이후가 적당하다. 우리가 하루 3시간 훈련을 시킨다면 유럽이나 남미는 일주일에 3시간 시킨다. 어릴 땐 재미, 열정을 심어주고 기본기 훈련을 많이 시켜야 하는데 우리 현실은 좀 힘들다. 이겨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다.”
―박주영 지동원 남태희 백지훈 오범석 손흥민 같은 선수들이 모두 이 감독에게 발탁되었다고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선수들은 각 학교에서 잘하는 상태로 자라나고 있었을 뿐이었다. 다만 좋은 선수를 찾으려고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학교가 없다. 열심히 발품을 팔았을 뿐이다.”
역시 자기자랑이라고는 없는 담백한 답이었다. 축구 전문가들은 한국 축구가 이른바 ‘뻥 축구’에서 ‘기술 축구’로 방향을 튼 첫 세대의 대표 주자로 박주영을 든다. 그런 ‘기술 축구 세대’를 키운 커튼 뒤에 바로 이 감독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과학적인 훈련을 시키는 지도자로도 유명하다. 아시아축구연맹이 주관하는 A, B, C급 코칭 코스와 인스트럭터 코스를 이수했으며 프로팀을 이끌 수 있는 자격증 중 최고인 P(프로)급도 땄다. 지도자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로도 정평이 났다. 훈련 교재를 2년여에 걸쳐 동영상 전집으로 만들어 지도자들에게 나눠 줬다. 이전엔 이렇다 할 지도자 교재가 없었다.
―선수를 선발할 때 외압을 거절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던데….
나를 자른다 해도 외압으로 선수 안뽑는다
“선수 선발에 청탁이 있는 것은 외국도 마찬가지다. 외부 목소리를 완전히 거부하진 않지만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는 편이다. 나를 자른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소신대로 선수를 선발할 뿐이다. 나는 선수들이 모두 내 자식이라고 생각한다. 누구 집 자식이고 부모가 누군지 상관하지 않는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라면 마음이 더 쓰인다.”
―한국 축구의 앞날을 어떻게 보나.
“아시아에서는 상위권이지만 방심하면 잡힐 수 있다. 그리고 프로가 잘돼야 한다. 축구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부분도 없어져야 한다. 정말 스포츠로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선진국은 풀뿌리 클럽들이 떠받치고 있다. 우리는 엘리트 분위기가 크다.
“일본은 프로축구팀을 만들 때부터 1, 2부 리그와 클럽까지 다 만들었다. 우리는 프로를 급하게 만들었고 이제야 1, 2부 리그로 나뉜다. 그것도 너무 오래 걸렸다. 2부 리그 팀이 몇 개가 될지도 미지수다. 초중고 클럽도 우리나라 현실을 볼 때 어렵다. 아래에서부터 체계적으로 가야 하는데 위부터 내려가고 있다.”
인터뷰가 끝난 후 몇몇 축구 전문가에게 이 감독에 대한 평을 물었다. 인맥과 파벌, 말(言)이 무성한 축구계에서 보기 드문 존재라는 데 다들 동의했다. 2000년 유소년 축구팀 육성 때부터 그와 인연을 맺어온 이용수 교수(세종대 체육학과)의 답은 이랬다.
‘뻥 축구’에서 ‘기술 축구’만든 풀뿌리 지도자
“지금은 그래도 형편이 나아졌지만 초창기만 해도 청소년 지도자는 박봉에다 대접이 좋지 않았다. 청소년 축구라는 게 아무리 뿌리이고 기초라 하지만 ‘음지(陰地)’아닌가. 이 감독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는 한국 축구의 오늘을 만든 숨은 공로자다. 현재 젊은 축구 선수들의 장단점을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신문선 명지대 스포츠기록분석학과 교수는 “청소년 지도자에게 중요한 것은 남을 이기는 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축구에 대한 재미, 열정, 자세,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르치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이 감독은 감독 이전에 훌륭한 교육자”라고 했다. 실제로 기자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며 ‘좋은 학생은 좋은 교사가 만든다’는 진리를 새삼 확인한 것 같았다.
다들 기초가 중요하다 말하지만 우리 사회는 기초보다는 결과, 2등보다는 1등, 아마추어보다는 프로에 더 눈길을 준다. 그런 점에서 ‘음지’ ‘기초’ ‘과정’을 중시하며 살아온 이 감독은 알려진 스타는 아니었지만 진정한 스타였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