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산업부가 국내 1위 취업포털사이트인 잡코리아에 등록된 2008년 이후 이직 희망자 300만 명을 분석한 결과 최 씨처럼 언제든 회사를 떠나겠다고 마음먹은 직장인들이 올해 들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 LG처럼 규모가 큰 10대 그룹(공기업 포함)의 직장인들은 상대적으로 이직 희망자가 적었지만 10대 그룹이라도 사세(社勢)나 향후 전망에 따라 사정은 달랐다. 한국 직장인들 사이에 이른바 ‘파랑새 증후군’이 만연한 셈이다.
○ 10대 그룹 3% vs 그 외 기업 28%
잡코리아 측은 “10대 그룹 직원과 여타 회사 직원 간 인식 차가 이처럼 크게 벌어진 것은 최근 5년 사이 처음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1년까지는 10대 그룹을 제외한 기업의 이직 희망자 증가율은 연평균 2.8∼6.3% 수준으로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10대 그룹은 ―2.7∼3.9%의 증가율을 보였다.
올해 들어 10대 그룹 외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가운데 이직 희망자가 급증한 것은 특히 입사한 지 10년이 안 된 젊은층이 대거 파랑새 증후군에 빠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1∼5년차 이직 희망자 증가율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는 최고 3.7%에 그쳤지만 올해는 24.3%로 증가했다. 지난해 이직 희망자 증가율이 3.0%였던 6∼10년차도 올해는 24.2%로 아주 높아졌다.
○ 대기업별로도 천양지차
10대 그룹에 속하는 대기업이라도 이직에 대한 직원들의 고민에는 큰 온도 차가 있었다.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세계시장을 이끌고 있는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은 이직 희망자 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감소했다. 삼성그룹 직원들은 이 외에도 조사대상 기간 내내 이직 희망자가 줄어드는 추세였다.
▼ 10대그룹外 기업 ‘파랑새족’ 28% 늘어 ▼
반면 나머지 6개 그룹은 증가세였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한때 고전했던 LG그룹은 올해 지원서 등록 건수가 21.6% 늘었고, SK플래닛 분사와 SK하이닉스 인수 등 조직에 부침(浮沈)이 있었던 SK그룹도 증가율이 두 자릿수(10.7%)였다. 포스코그룹(11.3%)과 한국토지주택공사(14.8%)도 이직 희망자가 늘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 직장인은 근무여건에 불만을 느끼기보다는 상대 기업에서 고액 연봉을 제시하면서 스카우트하는 사례가 많다”며 “다만 급변하는 경제상황 때문에 대기업 간에도 이직을 고민하는 직원 수가 차이 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 직장을 떠나는 이유
회사에서 연봉, 근로조건을 자세히 밝히지 않았거나 과장했고, 회사의 직무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던 점에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한 병원의 행정직인 나모 씨(26·여)는 “의료행정 분야 전문가로 키워주겠다는 회사의 말을 믿고 입사했지만 내가 할 일은 결국 의사들 뒤치다꺼리였다”고 하소연했다.
업무 숙련도가 높아지는 대리, 과장급인 6∼10년차 4명 중 2명은 돈보다는 ‘경영진과의 갈등’을 주요 이유로 꼽았다. 30대 대기업의 연구원(8년차)으로 있는 정모 씨(34)는 “어렵게 들어온 회사이고, 지금까지 젊음을 바치며 버텨온 세월이 있는데 단순히 돈 몇백만 원 더 받는다고 자리를 옮기고 싶지는 않다”며 “현장을 모르는 경영진이 자신들의 과거 경험만 믿고 엉뚱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게 괴롭다”고 털어놓았다.
대기업 직장인 중에서는 조직 내에서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의견도 나왔다. 전자회사에 다니는 유모 씨(9년차)는 “6∼10년차만 돼도 장차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대부분 알 수 있다”며 “회사의 수준을 조금 낮추더라도 더 오래 다닐 수 있는 곳을 선택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1∼15년차 이직 희망자가 최근 증가한 것은 빠른 세대교체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자부품 중소기업에 다니는 박모 씨는 “중소기업의 경우 10년차를 지나면 회사에서 관리하는 극소수 핵심인력을 제외하고는 버티기 힘들어지는 게 현실”이라면서 “회사에 다니는 것보다는 창업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첫 직장으로 대기업을 고집하지 않고 중소·중견기업에서 인정받아 대기업으로 이직하려는 선진국형 취업문화가 본격화한 것으로도 해석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례도 중소기업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게 사실이다.
동아일보 청년드림센터 자문위원인 박철우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어렵게 키운 인력이 기업 비밀을 들고 나가면서 기술 유출사건이 발생하거나 기존 아이템으로 창업하면서 기존 회사의 경쟁자로 돌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파랑새 증후군 ::
벨기에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동화 ‘파랑새’의 주인공들이 행복을 뜻하는 파랑새를 찾아 헤매듯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상을 찾아 떠도는 젊은이나 직장인들을 빗댄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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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욱·김지현 기자 cool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