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에 희망의 메이크업… “병마와 싸울 용기 얻었어요”
투병생활로 힘들어하던 여성 암 환자들은 전문가의 도움으로 직접 화장을 해보고 거울 속 달라진 모습을 보면서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 아모레퍼시픽이 지난달 중국 상하이 루이진병원에서 개최한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행사에 참가한 한 암 환자가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으며 직접 화장을 해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제공
또렷한 이목구비를 갖고 있었지만 생기 없고 창백하던 그의 얼굴은 메이크업 강사가 기초 제품을 바르고 메이크업을 시작하면서 점차 윤기와 활력을 되찾아갔다. 모자 없이 사람들 앞에 선 것이 쑥스러운 듯 고개를 떨어뜨렸던 그는 메이크업이 완성돼 갈수록 자신감을 되찾았다. “예쁘다” “정말 잘 어울린다”는 탄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날 아모레퍼시픽이 마련한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캠페인’에 참가한 이들은 루이진병원에 입원했거나 통원 치료를 받는 유방암 환자들이었다. 암 발병 이후 치워버렸던 화장품을 만지작거리며 강사의 설명대로 화장을 따라 해보는 이들의 얼굴엔 병의 그늘은 찾아볼 수 없는 밝은 웃음이 감돌았다.
갑작스러운 암 진단은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환자들은 항암·방사선 치료로 인한 육체적인 고통과 함께 깊은 당혹감과 상실감에 휩싸인다. 이날 행사장을 찾은 이들도 마찬가지다.
모델로 단상에 섰던 하오 씨는 “9월 수술을 받은 후 야위고 우울증이 심해져 화장을 하기는커녕 화장품을 쳐다본 적도 없었다”며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자문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행사에 참여한 뒤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막상 사람들 앞에서 대표 모델로 나서니 가슴이 벅찬 데다 화장을 한 뒤 거울을 보니 ‘내가 이렇게 예뻤구나’ 싶어서 눈물이 핑 돌았다”며 “병과 싸우면서도 용기와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유방암 환자 모임에서 알게 된 40, 50대 여성들은 서로 화장하는 모습을 살펴보면서 여고생들처럼 수다를 떨거나 웃음을 터뜨렸다. 50대 초반의 한 환자는 “화장하는 법도 잘 몰랐고 암까지 생겼기 때문에 용모를 가꾸는 데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며 “이젠 아모레퍼시픽에서 선물해준 메이크업 키트를 갖고 다니면서 스스로를 북돋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 기업이 주는 따뜻한 위로
“눈매를 강조하고 싶으면 아이라이너와 아이섀도를 함께 사용하세요.”
아모레퍼시픽 중국법인 직원들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은 환자들 옆에서 메이크업을 도와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한 환자가 “밖에 돌아다닐 때 부담되는 진한 눈 화장은 싫다”고 손을 내젓자 “눈 화장이 부담되면 립스틱만으로도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며 립스틱 고르는 법을 도왔다. “브러시는 손에 발라 조금 연하게 한 상태에서 볼에 바르면 자연스러워요. 아래쪽에서 대각선 위 방향으로 바르시면 돼요.” 자원봉사자들이 친절한 설명과 함께 화장을 도와주자 환자들은 변해가는 거울 속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아모레퍼시픽 뷰티 카운슬러로 일하며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신야원 씨(35)는 “암 환자들에게 작지만 뜻 깊은 희망을 선사할 수 있을 것 같아 입사하자마자 바로 봉사단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신 씨는 “화장을 도와주다 보면 처음 본 내게 살아온 이야기나 속마음을 허물없이 털어놓는 분이 많다”며 “드리는 것보다 배우는 게 훨씬 많은 일”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행사를 지켜보러 온 병원 관계자들도 활기를 되찾은 환자들을 지켜보며 즐거워했다. 후이췬(胡翊群) 부원장은 “주변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 혼자가 아니라는 긍정적인 생각은 암을 극복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며 “한국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이 환자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고 정신적 위로를 주는 행사를 마련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중국에선 지난해 시작했지만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는 국내에서는 이미 자리를 잡은 아모레퍼시픽의 대표적 사회공헌 활동 중 하나다. 암 치료 과정 중 피부 변화와 탈모 등 급작스러운 외모 변화로 고통받는 여성 암 환자들에게 스스로를 아름답게 가꾸는 노하우를 알려줘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로 2008년 시작됐다. 현재까지 국내에서는 총 7500여 명의 여성 암 환자와 1900여 명의 아모레 카운슬러 자원봉사자가 참가했다. 중국에서는 이날 행사를 포함해 올해 5차례 캠페인을 진행했다. 현재까지 총 213명의 암 환자와 62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했다.
▼ 유제천 중국법인장 “현지 상황 맞는 다양한 사회공헌 펼것” ▼
아모레퍼시픽 중국법인장인 유제천 부사장(56·사진)은 2011년부터 중국 내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중국에 처음 진출한 것은 1993년 선양(瀋陽)법인 설립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2007년 라네즈와 마몽드의 인기로 처음 흑자를 내며 사업에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중국 내 매출은 약 1909억 원이며 설화수와 이니스프리가 최근 주요 도시 백화점과 전문매장에 진출했다.
유 부사장은 “현재 중국 시장은 세계 뷰티업계의 치열한 각축장”이라며 “글로벌 화장품 업체들의 점유율이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는 데다 자국 기업 육성에 힘입은 중국 현지 기업들의 견제도 거세다”고 소개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런 경쟁 여건 속에서도 성과가 좋다. 올해 3분기까지 매출은 190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성장했다. 2015년 매출 목표는 7000억 원이다.
중국 사업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라서면서 찾아온 고민은 사회공헌 활동 방안이었다. 아모레퍼시픽의 대표적인 사회공헌 활동 중 하나인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캠페인을 중국에 도입하기로 결정했지만 초기 단계에서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이 많았다.
유 부사장은 “국내에서와 달리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에 대해 ‘생색내기 행사’라거나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영업활동’이라는 식의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봤다”며 “간단한 협조를 받기조차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 중국본부 임직원들은 병원 관계자와 암 환자를 일일이 찾아가 행사의 취지와 내용을 설명하는 ‘정면 돌파’로 문제를 해결했다. 일부 관계자를 한국으로 초대해 캠페인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결과 지난해 처음으로 상하이 푸단대와 제휴해 총 68명의 여성 암 환자를 응원하는 캠페인을 3회에 걸쳐 성공적으로 치렀다. 올해 2주년을 맞아 규모와 횟수를 늘려가고 있다. 그는 “처음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분들이 지금은 가장 적극적인 후원자가 됐다”고 전했다.
아직 중국 내에서의 사회공헌 활동은 첫발을 뗀 수준이다. 유 부사장은 중국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공헌 프로그램 도입에 공들이고 있다. 4월 중국에 처음 진출한 이니스프리는 네이멍구 사막화 방지를 위해 나무 심기를 장려하는 ‘그린 라이프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유 부사장은 “중국에서도 여성의 건강한 아름다움을 응원하고 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현지 상황에 맞는 다양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다짐했다.
상하이=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