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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칼럼/임원빈]백의종군이란 말, 함부로 쓰지 마라

입력 | 2012-12-01 03:00:00


임원빈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해군사관학교 명예교수

백의종군(白衣從軍)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분이 충무공 이순신이다. 그런데 요즘 이 말을 가장 많이 쓰는 사람은 정치인들일 것이다. 국면 전환을 꾀하거나 불리한 상황을 반전하고자 할 때 흔히들 “백의종군하겠다”고 한다. 안철수 후보도 사퇴회견문에서 그렇게 말했다.

상황은 약간씩 다르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으로 쓰는 것 같다. 그런데 이는 본래의 의미와는 많이 다르다.

우선 백의종군은 계급이나 직책 없이(白衣) 군문에 종사한다(從軍)는 뜻이다. 본인이 자발적으로 내리는 결정이 아니라 조선시대 무인 관료들에게 내리는 처벌의 하나였다. 사형, 유형, 도형, 장형, 태형 등 5단계 처벌 중 감옥에 가두는 도형과 곤장을 때리는 장형 사이의 벌(罰)로 비교적 경징계 범주에 속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백의종군은 무과 과거 급제자의 신분은 유지시킨 채 계급이나 직책만 박탈한 상태에서 군문에 종사시키는 처벌로 이후 다시 공을 세우면 관직을 회복시켜 주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선의의 처벌이었다. 이순신도 백의종군 처분을 받았지만 나중에 복직된 것을 보면 인재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재기의 기회를 주기 위한 제도로 오늘날에도 참조할 만한 선진적 측면이 있다.

조선시대 무인관료 처벌의 하나

이순신은 두 번의 백의종군 처분을 받는다. 첫 번째는 함경도 조산보 만호(지금의 대령)로 근무하면서 두만강 하구 녹둔도(鹿屯島) 둔전관을 겸할 때 오랑캐 공격을 받고 피해를 본 사건이 빌미가 되었다. 이순신은 녹둔도 병력이 오랑캐를 지키기에 역부족임을 알고 수차례에 걸쳐 직속상관인 함경도 북병사 이일(李鎰)에게 병력 증원을 요청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결국 1587년 8월 오랑캐가 녹둔도를 기습해 10여 명이 전사하는 등 피해가 났다. 이순신은 곧바로 반격을 시도해 다수의 오랑캐를 사살하고 또 포로로 잡혀가던 60여 명을 구출했다.

그러나 북병사 이일은 병력 증원 요청을 무시한 자신의 과오를 숨길 목적으로 이순신에게 책임을 물으려 했다. 이때 조정에서는 “이순신이 패전한 장수는 아니니 백의종군하라”는 처분을 내린다. 이순신은 무보직으로 있다가 이듬해인 1588년 1월 시전부락 전투에 우화열장(右火烈將)이란 지휘관 직책으로 참전해 공을 세운다. 이 공로로 백의종군 처분에서 벗어나 훈련원에 복직한다.

두 번째 백의종군은 1597년 1월 가토 기요마사(왜군의 선봉장)를 잡으라는 임금 선조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이 빌미가 되었다. 이순신은 선조의 명령이 당시로서는 전세에 득이 되지 않는 무리한 주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조는 이순신에게 누적된 불만을 엮어 그를 통제사에서 파직한다. 그러고는 한성으로 압송하고 의금부에 투옥하여 죄상을 조사한다. 이순신은 의금부에서 한 달여 신문을 받다가 초계에 있는 도원수 권율 밑에서 백의종군하라는 처분을 받는다.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은 이때 도원수 권율의 군사 자문에 응한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15일 조선 수군이 칠천량에서 대패하자 권율로부터 패전의 상황을 파악하라는 임무를 받고 노량 등 남해 연안을 돌아보던 중 8월 3일 진주의 손경례 집에서 ‘통제사로 임명되었다’는 교지를 받고 관직에 복귀한다.

어떻든, 백의종군 처벌을 받은 사람이 이순신만은 아닐진대 유독 우리가 백의종군 하면 이순신을 떠올리는 이유는 뭘까. 그리고 지금의 정치인들이 그 정신을 계승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이순신이 백의종군 때 보여준 나라 사랑, 백성 사랑의 정신 때문이다.

이순신은 종4품인 만호 벼슬에서 파직되었을 때도, 종2품인 삼도 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되었을 때에도 마음속에 언제나 나라와 백성이 있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치욕과 모욕이라 생각하며 자포자기했을 텐데 억울한 처벌을 받아도 언제나 그것을 받아들이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첫 번째 백의종군 시절에는 시전부락 전투를 지휘해 승리했고 두 번째 백의종군을 마치고는 복귀 후 궤멸 직전의 조선 수군을 추슬러 절대 열세였던 명량해전을 기적 같은 승리로 이끌었던 것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앞으로 백의종군을 말하는 정치인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유념해야 할 것 같다. 우선 백의종군은 자발적으로, 스스로 하는 게 아니라 처벌이란 의미이니 당당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 된 심정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럴 상황에 놓였다는 것은 다수 국민의 무언의 명령으로 자신에게 경고를 내렸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의 ‘무언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둘째, 백의종군은 모든 것을 버리고 절간 같은 데 혼자 숨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순신이 그랬듯 자리나 지위에 상관없이, 그 어떤 조건도 버리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혼신의 힘을 바치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민에 의해 다시 기회가 주어졌을 때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국민의 열망에 화답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또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백의종군’을 말한 안철수 씨가 그 의미를 제대로 살려낼지 지켜볼 일이다.

임원빈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해군사관학교 명예교수